이야기를 나누는 고객은 드물다. 그저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멍하게 시세판만 뚫어지게 쳐다본다.
월드컵 열기는 아직 뜨거운데 서울의 한 쪽에서 개인투자자의 한숨이 무겁게 흘러나온다.
"너무 떨어지네요. 이러다 700선도 무너질 수 있겠는데요?"
한 50대 중년남성에게 말을 붙였더니 아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오후 2시 40분을 넘기면서 700선이 붕괴됐다.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나왔다.
시세판 옆에 마련된 전광판에서 뉴스가 쉴 새 없이 떴다. '미국발 악재 국내 금융시장 불안, 기관 매도 확대….' 전광판 옆 TV에는 이따금 열광하는 '붉은 악마'의 모습이 보였다. 월드컵 4강 신화와 주가 폭락이 묘한 대조를 이뤘다.
흉흉한 소문도 들렸다. '한 증권사 지점에서 투자자가 시너를 뿌리는 소동을 벌였다'는 루머까지 나돈 것. 한 증권사 직원은 "사실 나도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60대 투자자 두 명이 속삭였다.
"손해보고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아."
"B사 공모주 청약은 했어?"
"이런 판에 공모도 재미없어. 기관들은 왜 자꾸 팔기만 하는 거야."
기관투자가와 증권사 투자전략가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K씨(34)는 "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며 투자를 부추기더니 이제 말을 바꾼다"고 말했다. 그는 "기관들이 손절매에 나서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매입가보다 20%만 떨어지면 무조건 파는 게 위험관리냐"며 기관을 탓했다.
4월 초 상황과 너무 다르다. '6개월 양봉, 상반기 중 1000포인트 돌파, 기업 사상 최대 실적' 등 온통 장밋빛이었던 때다.
오후 3시. 지수는 700에 턱걸이를 했다. 장(場)이 끝나도 투자자들은 선뜻 자리를 뜨지 못했다. 허탈한 표정으로 온통 녹색인 시세판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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