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허탈한 객장 르포

  • 입력 2002년 6월 26일 16시 46분


종합주가지수가 장중 한 때 700선이 무너진 26일. 서울 여의도 대신증권 객장의 시세판은 온통 녹색이다. 주가 상승을 나타내는 붉은색은 아예 찾아보기 어렵다.

이야기를 나누는 고객은 드물다. 그저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멍하게 시세판만 뚫어지게 쳐다본다.

월드컵 열기는 아직 뜨거운데 서울의 한 쪽에서 개인투자자의 한숨이 무겁게 흘러나온다.

"너무 떨어지네요. 이러다 700선도 무너질 수 있겠는데요?"

한 50대 중년남성에게 말을 붙였더니 아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오후 2시 40분을 넘기면서 700선이 붕괴됐다.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나왔다.

시세판 옆에 마련된 전광판에서 뉴스가 쉴 새 없이 떴다. '미국발 악재 국내 금융시장 불안, 기관 매도 확대….' 전광판 옆 TV에는 이따금 열광하는 '붉은 악마'의 모습이 보였다. 월드컵 4강 신화와 주가 폭락이 묘한 대조를 이뤘다.

흉흉한 소문도 들렸다. '한 증권사 지점에서 투자자가 시너를 뿌리는 소동을 벌였다'는 루머까지 나돈 것. 한 증권사 직원은 "사실 나도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60대 투자자 두 명이 속삭였다.

"손해보고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아."

"B사 공모주 청약은 했어?"

"이런 판에 공모도 재미없어. 기관들은 왜 자꾸 팔기만 하는 거야."

기관투자가와 증권사 투자전략가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K씨(34)는 "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며 투자를 부추기더니 이제 말을 바꾼다"고 말했다. 그는 "기관들이 손절매에 나서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매입가보다 20%만 떨어지면 무조건 파는 게 위험관리냐"며 기관을 탓했다.

4월 초 상황과 너무 다르다. '6개월 양봉, 상반기 중 1000포인트 돌파, 기업 사상 최대 실적' 등 온통 장밋빛이었던 때다.

오후 3시. 지수는 700에 턱걸이를 했다. 장(場)이 끝나도 투자자들은 선뜻 자리를 뜨지 못했다. 허탈한 표정으로 온통 녹색인 시세판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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