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컴 뒤에는 4월말 물러난 전 최고경영자(CEO) 버나드 에버스가 있다. 그가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엄청난 인수합병 때문이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1997년 ‘이 사람이 대체 누구냐’라는 제목으로 무모하게 회사를 키워가는 에버스씨를 다뤘다. 뉴욕타임스는 1999년 “이제는 에버스씨가 더 사들이기보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잘 운영해야 할 때”라고 주의를 촉구했다. 그러나 에버스씨는 듣지 않았다.
에버스씨는 누구인가. 올해 60세, 캐나다 출신. 대학 두 차례 중퇴 후 미국 미시시피 칼리지 졸업. 낮엔 우유배달, 밤엔 경비원으로 근무. 1983년 중장거리 전화업체 LLDS에 투자했다가 1985년 CEO에 취임. 그의 경영 입문 과정은 이처럼 간단했다.
그 후 19세기형 자본가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해 그가 15년간 성사시킨 인수합병은 무려 60건. 1995년엔 기업을 공개하면서 회사명을 월드컴으로 바꿨고 이 회사는 종업원 8만5000명의 미국 2위 장거리 통신업체로 자라났다.
그러나 ‘회사가 계속 굴러가기 위해 수백억달러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신용등급도 주가도 추락했다. 1999년 6월 주가가 62달러까지 치솟아 회사 시장가치가 1153억달러나 됐지만 그것 역시 엉터리 숫자에 기초했던 것이었는지 가려질 것이다.
에버스씨는 ‘도전적이면서 사교적’이라는 평판을 들어왔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자신이 마음먹은 것을 해내고 만다는 말이다. 통신업계를 담당하는 한 애널리스트가 “2000년 스프린트와의 합병을 시도하다 정부당국의 제지로 무산된 것이 그에게 누군가 노(No)라고 말한 첫번째 사례”라고 말했을 정도다.
에버스씨와 월드컴의 오늘 모습은 한때 한국인들에게 익숙했던 19세기형 저돌적 사업가와 사상누각의 몰락 과정처럼 보인다. 이는 월가와 ‘미국 주식회사’의 문제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 와중에 일부 애널리스트들이 언론과 투자자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며칠 전까지 월드컴에 대해 ‘강력매수’의견을 냈다가 문제가 터지자 평가등급을 낮췄거나 ‘평가곤란’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홍권희 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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