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씨 부모 “내 아들 죽음 민주화 초석 되었으면”

  • 입력 2002년 6월 27일 18시 33분


“내 아들의 죽음이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초석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1983년 경기 연천군 제5사단 사령부 초소에서 숨진 서울대생 한희철(韓熙哲·당시 22세)씨의 아버지 한상훈(韓相勳·74)씨와 어머니 김인연(金仁連·71)씨는 27일 아들의 사진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지었다.

26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한희철씨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을 접한 한씨 부부의 표정에는 20년 인고의 세월이 한꺼번에 스쳐 지나갔다.

어머니 김씨는 “당시 군은 아들이 그저 자살했다고만 밝혔을 뿐 민주화운동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내 아들이 군에서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죽었나 두려워하며 아들의 시신을 화장한 것이 평생 마음의 한이 된다”고 말했다. 한희철씨는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83년 군에 입대한 뒤 ‘녹화사업’(민주화운동 학생들에게 프락치 활동을 강요하는 것) 과정에서 받은 가혹행위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평생 도장 만드는 일을 하며 빈곤하게 살았던 아버지 한씨에게 한희철씨는 믿음직한 아들이었다. 아버지 한씨가 20년 동안 고이 간직해온 한희철씨의 유서와 편지들에는 그의 글씨체만큼이나 또박또박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전 얼마 전 국군보안사령부에 끌려가게 됐습니다. (중략) 제가 그동안 해 온 활동에 대해 40장에 걸친 진술서를 쓰게 됐고 반성문과 서약서까지 5일 동안 완성했습니다. (중략) 하나님께 용서를 빌며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양심을 지키며 사는 국민의 축적된 힘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기다리겠습니다.’

아버지 한씨는 “신군부 정권 하에서 소리 없이 사라져간 군인이 어찌 내 아들뿐이겠느냐”며 “부모가 물려준 생명을 버려가면서까지 민주주의를 염원했던 ‘한국의 아들들’의 명예가 이제라도 회복되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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