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것이 한나라당 몸 낮추기인가

  • 입력 2002년 6월 29일 18시 39분


한나라당은 6·13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뒤 겉으로는 몸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왔다. 대통령 선거라는 큰 행사를 앞두고 어떻게 해서든 승리하려는 얄팍한 전략으로 볼 수도 있었지만 이회창 대통령후보까지 나서 여러 차례 “낮고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해 어느 정도 본심이 담겨있다고 믿는 유권자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나라당 김용균 의원이 선거재판에 대해 “1심 재판장은 호남, 2심은 충청이 맡았다”며 특정 지역 출신 판사들이 민주당 편을 들었다는 상식 밖의 발언을 했을 때도 인내심을 갖고 비판하지 않았다. 서청원 한나라당 대표가 서둘러 공개사과를 한데다 겸손한 정당이 되겠다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잇따른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인의 발언을 믿어보려는 유권자의 선의는 또 한번 배신당했다.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학교를 나온 좋은 가문 출신의, 훌륭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취지의 하순봉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발언은 한나라당의 몸 낮추기가 진심이 아니었음을 확인한 것이라 하겠다. 지긋지긋한 지역 나누기도 모자라 이제는 출신학교 가문 경력에 따른 사분오열을 더 하자는 것인가. 소속 정당 후보를 자랑하려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상대방 후보는 그렇지 않다는 오만한 발상이 없다면 공개적으로 그런 발언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 의원은 기자들의 묻는 말에 대답하다가 나온 말이라고 변명하지만 그는 얼마 전에도 당내 반대파 인사들을 향해 ‘쥐새끼’ 운운했다 부총재직에서 사임한 사람이다. 문제발언을 계속하고 있으니 순간적인 말실수로 보기보다는 인격의 수준이 발언으로 드러났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지역 세대의 간극을 메우고 하나가 되는 대화합의 역사를 이뤘다. 이러한 국민 앞에서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인은 진실로 부끄러워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한나라당을 이끌고 있는 이회창 후보가 이번 망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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