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60…1925년 4월 7일(10)

  • 입력 2002년 6월 30일 17시 22분


“자, 미역국이다” 복이가 밥상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애비하고 너들은 마루에 차려놓았으니까, 식기 전에 어서 먹그라”

우철은 아버지를 부르러 가게로 갔다. 용하는 둥그런 의자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비를 보고 있었다. 아니, 아무 것도 보고 있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기다리다 지쳐 얼이 빠진 듯한 뒷모습이었다.

“아버지, 저녁 밥 다 차려졌다” 목소리가 우철 자신의 귀에도 서먹하게 울렸다.

평소에는 아버지 혼자만 다른 상을 받는데, 오늘밤은 같은 상에서 먹어야 한다. 깍두기, 쌀밥, 미나리 나물, 미역국이 없다, 역시 엄마만을 위한 국이었다. 4월은 김장김치, 장아찌, 젓갈 등 저장 식품은 다 떨어지고 그 해 작물은 아직 영글지 않은 때라 1년 중에서 제일 먹을 것이 적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밤만큼은 따끈한 것을 먹고 따스한 배로 잠들고 싶었다. 우철은 긴장과 낙담이 뒤섞인 표정으로 밥상머리에 앉았다.

용하는 아무 말없이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깍두기에 젓가락을 내밀었다. 무를 씹는 소리를 신호로 우철과 소원이 젓가락을 들었다. 세 식구는 밥을 다 먹을 때까지 한 마디도 말을 나누지 않았다.

용하의 코고는 소리, 비 소리, 모든 소리가 어둡게 지쳐 있어, 오늘 태어난 갓난아기마저 어둠에 숨을 맞춰 울고 있는 듯 하다. 응애-, 응애-, 응애-. 똥을 누고 싶다. 여느 때는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누는데, 오늘은 새벽부터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똥을 눌 틈이 없었다. 우철은 애써 참으면서 이불에서 기어나와 방 구석에 있는 호롱불을 들었다. 문을 열자, 응애-, 응애-, 아기 소리가 커졌다. 우산은 어디에 있는 걸까, 안 되겠다 더 이상 못 참겠다. 우철은 툇마루 밑 디딤돌에 있는 여자 고무신을 아무렇게나 신고 손바닥으로 호롱불 갓을 가리고 마당을 뛰었다. 아버지는 뒷간과 외가는 먼 게 좋다고 했는데, 나는 어느 쪽이든 가까운 게 좋다. 우철은 뒷간 문을 열고 호롱불을 벽에 걸려고 했다. 그러다 고무신이 그만 구멍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제기랄!”

우철은 속바지를 내리고 조심조심 널빤지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발치로 물이 떨어졌다. 빗물이 새는 것이다. 널빤지도 벽도 젖어 있었다.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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