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공휴일이 너무 많았다. 연간 40일이 넘는 휴일이 있었다. 기독교 국가인지라 부활절 성탄절 등이 휴일이었고 이밖에도 많은 종교적인 기념일들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었다. 연간 52일의 일요일과 40일의 공휴일을 다 쉬면 휴일이 일년 365일의 약 4분의 1에 해당한다. 당연히 ‘놀아도 너무 논다’는 반성론이 일었다. 1800년대 중반 빅토리아 여왕시대에 들어서 이 휴일을 몽땅 없애 버리는 대신 은행휴일이 생겨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종교적인 휴일이 사라지고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은 휴일이 만들어진 것일까.
▷은행휴일을 정하는 데 앞장선 곳은 영국 자본주의의 상징이랄 수 있는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이다. 1694년 전쟁비용을 조달할 목적으로 런던의 금융업자들에 의해 주식회사 형태의 민간은행으로 설립되었다가 나중에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이 된 영란은행이 1871년 공휴일 대신 며칠을 정해 은행 문을 닫고 쉬었다. 그 이후 자연스럽게 은행이 쉬는 날이 공휴일이 되어 버렸다. ‘너무 많이 쉰다’는 시중의 여론을 반영해서 중앙은행이 휴일을 정한 셈이다.
▷우리나라 은행들도 이 달부터 토요일에 쉰다. 주5일 근무제가 노사간의 협상 실패로 시행이 지연되자 은행 노사가 먼저 토요일에 쉬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렇다고 토요일이 법정공휴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니 영국식 ‘은행휴일’과 비슷하게 됐다. 은행이 쉬면 상거래를 하는 기업들은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 어렵다. 기업과 국민이 겪는 불편 때문에 점점 쉬는 곳이 늘어날 것이다. 영국이나 우리나라나 은행이 공휴일을 좌지우지하는 ‘금력(金力)’을 발휘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법정 공휴일에다 ‘은행휴일’까지 쉬면 우리가 영국사람보다 더 많이 쉬는 것이 아닐까 싶어 한편으로는 걱정스럽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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