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컵의 영광은 ‘붉은 악마’ 응원단과 4700만 국민 모두의 몫이기도 하다. 한국팀의 경기 때마다 전국에 넘쳐흐른 붉은 물결과 질서 있는 응원은 전 세계에 한국인의 놀라운 활력과 수준 높은 국민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코리아 브랜드’를 세계에 알린 값진 성과다. 우리는 이번 대회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정체성과 나라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에 따른 일체감과 자긍심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하나로 융합(融合)시킬 수 있다는 소중한 가능성도 열어 놓았다.
그러나 아직은 가능성일 뿐이다. 국민의 통합된 에너지를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사회 각계의 꾸준한 노력이 뒤따를 때만이 가능성이 현실로 변할 수 있다. ‘6월의 축제’는 그러한 사회적 노력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축제의 뒤풀이가 길어져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는 우리 현실은 여전히 엄혹하다. 엊그제 서해에서는 북측의 도발로 다수의 우리 젊은 군인들이 숨지거나 부상하는 참사가 빚어졌다. 비극적 분단현실의 본질은 변치 않고 있는 것이다. 서해교전 소식이 전해지자 전사한 병사들에게 묵념으로 조의를 표하고 응원을 펼친 젊은 응원단의 의연한 자세는 웬만한 북의 도발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의 표출이란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 그런 자신감으로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월드컵으로 고양(高揚)된 국민적 자신감을 미래의 비전에 접목시키는 것이야말로 정치권이 담당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국회 원 구성을 질질 끌며 한 달 이상 ‘식물국회’를 면치 못했다. 입으로는 월드컵을 계기로 미래지향적 정치, 생산적 정치를 하자면서도 구체적 실천방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민 눈에는 오로지 정권 다툼에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비칠 뿐이다. ‘선진 축구’ ‘후진 정치’의 모습이다.
이래서는 한국축구가 이뤄낸 ‘4강 신화’는 단지 신화에 그칠 것이다. 모처럼 이뤄낸 국민적 일체감과 자부심도 빠르게 사라질지 모른다. 축제보다 ‘4강 신화’ 이후를 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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