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 인터넷판은 30일 한 펀드 매니저의 말을 빌어 엔론, 월드컴, 제록스에 이어 또다시 어느 기업에서 초대형 회계부정 사건이 터질지 몰라 가슴 졸이는 미 경제계의 상황을 전했다.
한때 세계적인 모델로 각광받던 미 경제가 이처럼 긴장과 불안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유는 뭘까.
워싱턴포스트는 30일 미국식 모델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미 공영방송 PBS의 세계경제 수석 평론가인 대니얼 예르긴은 이날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시스템 전체가 주가 상승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 자본주의가 가장 앞세우는 것은 ‘주주의 이익’. 주주에는 평범한 미국인 대부분이 포함된다. 미국인이 퇴직연금으로 주식에 투자한 액수는 무려 11조5000억달러. 노후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주가가 올라야 한다.
퇴직연금을 대신 운용하는 펀드 매니저들은 실적이 좋지 않으면 쫓겨난다. 매니저들은 회사들에 수익과 주식 가치를 높이라고 압력을 가하고 매니저들의 기대에 못 미치면 주가가 폭락하고 회사가 다른 회사에 먹히기 때문에 일부 회사들은 순익을 조작해서라도 말끔하게 장부를 고쳐놓는다고 예르긴씨는 썼다.
주가는 분기별 기업 실적에 따라 춤춘다. 주가를 떠받치기 위해서는 전 분기보다 단 몇 센트라도 돈을 더 벌어야 한다. 예르긴씨는 “전 분기보다 순익이 떨어진다는 것은 대참사로 간주되는 분위기였다”고 표현했다. 유럽에서는 미국식 분기별 실적 공개에 대해 ‘단기 결정주의(Short-termism)’라고 비난하고 있다.
미 의회가 최고경영자(CEO)의 봉급에서 세금 감면 혜택을 축소하자 반대급부로 급속히 확산된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도 주가상승을 ‘비이성적으로’ 부추겼다. CEO는 이제 자신을 위해서라도 주가를 띄워야 한다.
그러나 경기가 악화되면서 수익이 악화되자 때로는 분기별 실적을 포장하고 싶은 유혹에 빠졌고 이를 감시해야 할 회계감사법인들은 고객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너무 나긋나긋해졌다.
미 회계규정 역시 허점이 많았다. 804쪽이나 돼 가장 엄격한 기준이라고 미국은 주장해 왔지만 복잡한 만큼 빠져나갈 구멍이 많았다.
월드컴은 장비와 통신선 유지 보수비용 38억달러를 자본지출로 전환함으로써 순익을 낸 것처럼 가장했다. 미 회계규정에 따르면 기존 기간시설의 유지에 들어간 돈은 ‘비용’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기존 기간시설에 대한 투자라고 해도 그 가용수명을 늘렸다면 ‘자산’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유지보수였는지 아니면 시설 수명의 연장이었는지는 쉽게 구분할 수 없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이처럼 마지막 안전장치인 회계의 ‘뚜껑’이 열리면서 판도라의 상자 안에 갇혀있던 온갖 문제가 드러나고 있는 것.
예르긴씨는 “나무가 하늘까지 자라날 거라고 믿었던 (탐욕의) 시대가 끝이 났다”면서 “대중은 한때 주지사보다 더 강력하고 명예로운 존재로 대접했던 미 경제의 주체, CEO들을 더 이상 영웅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월드컴의 버나드 에버스, 엔론의 케네스 레이, 타이코의 데니스 코즐로스키 등 미 경제를 호령했던 CEO들은 지금은 미 법무부의 수사대상에 오르는 신세로 전락했다.
▼WP 4大 문제점▼
[1]주주이익 최우선
기업 안정대신 주가상승 연연
[2]분기별 실적공개
장기 안목없이 단기결정 횡행
[3]CEO에 스톡옵션
자기 보상 늘리려 실적 뻥튀기
[4]복잡한 회계규정
‘귀에걸면 귀고리式’조작 빌미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