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交戰사태에도 못여는 '식물국회'

  • 입력 2002년 7월 1일 18시 46분


서해교전이라는 국가적 비상상황 속에서 국회가 본회의도 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국민의 아들들이 북한의 무차별 포격에 참혹하게 스러져 갔는데도 함께 슬퍼하고 대책을 논의해야 할 국회가 이처럼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다.

한나라당 이규택, 민주당 정균환 원내총무는 서해사태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후반기 원구성을 8일까지 완료하기로 잠정합의했다. 그동안 원구성 문제를 놓고 현격한 입장차이를 보이던 두 당이 북한도발이라는 비상상황의 영향으로 서둘러 합의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두 당이 이 긴급한 상황에서 의장단 및 상임위원장 배분을 둘러싼 당내의 ‘밥그릇다툼’을 조정하기 위해 원구성을 늦춘 것은 치졸한 일이다. 특히 민주당으로서는 권력비리 공적자금문제 등에 서해교전문제까지 겹칠 경우 국회를 여는 것이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루라도 빨리 열려야 할 국회가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밀려 이처럼 표류하고 있는 것은 사안의 선후를 구별 못하는 행동이다.

물론 국회는 서해교전이 일어난 당일 오후 전반기 국방위원들로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다. 그러나 이미 임기가 끝나 의결권조차 없는 전반기 국방위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정부를 호통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일을 할 수 없어 그야말로 시늉만 낸 국회가 실망스럽다.

두 당의 총무들은 “급한 일이 발생하면 임시의장을 선출해 현안에 대처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들의 말에서 진솔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번 사태보다 더 급한 일이 무엇이란 말인지 그들의 안이한 상황인식에 할말을 잃게 된다.

국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가. 국가적 중대사가 발생했을 때 정부에 진상을 추궁하고 국민의 뜻을 모아 대책을 마련하는 곳 아닌가. 국회는 24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을 어물쩍 넘김으로써 피지도 못하고 진 ‘꽃다운 넋’들과 유족들에게 큰 죄를 짓고 있다. 어떤 경우라도 당리당략이 국가적 중대사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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