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남측 책임론’ 무책임하다

  • 입력 2002년 7월 3일 18시 39분


북한의 명백한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서해교전의 본질을 호도하는 한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어선들이 어로저지선을 넘어 북한을 자극했다는 ‘남측 책임론’이 그것이다. 전사자들의 장례식에서 흘렸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일부 언론과 정치권이 그같이 주장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군 당국의 분석과 달리 서해교전이 우발적인 사건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교전 당일 우리 어선들이 어장을 이탈해 북쪽에서 조업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를 종합하면 우리 어선들이 북한 경비정을 자극한 책임도 없지 않다는 주장이다. 민주당도 ‘새로운 상황’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교전 직후 북한군의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도발이라고 발표했다. 전 군(軍)이 경계의 촉각을 곤두세우는 비상상황에서 우리 쪽이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것처럼 말하는 데 대해 대다수의 이성 있는 국민은 경악하고 있다.

‘남측 책임론’의 논리적 허구와 무책임성을 밝히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 어선이 조업구역을 얼마나 멀리 벗어났는지 진상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군에 따르면 당시 일부 어선이 어로저지선을 넘었다가 돌아온 적은 있지만 북방한계선(NLL)에는 근처에도 안 갔다고 말한다. 설령 우리 어선들이 NLL에 근접하거나 넘어갔다고 해도 북한 경비정을 얼마나 자극했는지, 인과 관계를 단정짓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북한 어선이 NLL남쪽으로 내려왔을 경우 우리가 과연 그것을 빌미로 북한 영해에 들어가 그쪽 경비정을 격침시킬 수 있다는 얘기인지 묻고 싶다. 그런 차원에서 어선을 앞세운 ‘남측 책임론’의 무책임성은 분명해진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남측 책임론’이 왜 제기되는지 그 저의를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대북정책의 실패를 호도하려는 저의인지 아니면 맹목적인 북한 싸고돌기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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