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盧후보 중립내각 요구 헷갈린다

  • 입력 2002년 7월 4일 18시 32분


민주당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가 어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정쟁중단을 위한 중립내각’을 요구한 것이나 청와대측이 이에 대해 ‘개각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유감을 표명한 것은 모두가 적절치 못하다.

우선 청와대측의 이날 ‘유감’속에는 ‘어느 누구도 개각에 대한 요구나 제의는 할 수 없다’는 편견이 개입되어 있는 것 같다. 그 같은 요구나 제의는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러나 개각요구 자체마저 봉쇄한다면 어떻게 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실정에 대한 책임을 물어 개각을 요구하는 것은 국민의 당당한 권리다. 개각을 위한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면 국민의 개각요구를 경청해 인사에 반영하는 것 또한 대통령의 책무다. 김 대통령도 과거 야당시절 빈번히 개각 요구를 하지 않았는가.

노 후보의 이날 중립내각 요구 역시 그 내용을 보면 설득력이 없다. ‘국무총리 법무장관 행정자치부장관 등 선거관련 부처 책임자의 경우 한나라당의 추천도 받아 임명토록 하자’고 한 노 후보의 제의는 현실성이 없는 ‘정치적 언사’에 불과하다. 당장 직접 당사자인 한나라당측은 “우리가 언제 내각에 참여한다고 했느냐”며 역공을 펴고 있다. 더구나 과거 정치권의 중립내각 요구가 집권세력의 선거개입을 막기 위해 야당측이 줄기차게 주장해 오던 ‘선거 메뉴’였던 점을 감안하면 더욱 헷갈린다.

앞으로의 국회의원 재·보선과 대통령선거의 공정성문제는 정당간에 다시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또 우리의 선거문화로 볼 때 권력개입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공정, 공명선거에 대해서는 이제 국민 모두가 공감대를 형성해 지난 6·13 지방선거도 큰 시비없이 무난히 치렀다.

어제 노 후보의 중립내각 요구와 청와대측 반응은 국민의 의식수준과 거리가 멀다. 정치권이 외면당하는 이유도 그런 신중치 못한 처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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