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北 입장 대변 급급▼
현 정부가 북-미회담의 개최를 강력히 희망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재론이 필요없다. 현 정부가 고집스럽게 추진한 햇볕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미국과 일본의 대북정책이 우호적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의 자세는 북한의 태도에 상당한 변화가 있기 전에는 기존의 대북정책을 수정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 정부는 북한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애써 강조해 왔지만 정작 증거는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외에는 변변하게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오히려 서해교전 사태는 북한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주장의 대단히 좋은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서해사태의 우발성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진정한’ 의도는 그와는 다르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지지자가 별로 많지 않은 듯하다.
우리 정부가 국민과 외국을 상대로 마치 북한의 대변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는 듯한 인상을 주는 점에 대해 일부 인사들은 ‘친북 좌익’이라는 말을 쓰지만 그것은 과장되거나 약간은 악의적인 표현으로 보인다. 정말로 중대한 사실은 햇볕정책이 무슨 신성불가침의 원리인 것처럼 고집한 까닭에, 서해교전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 부닥쳐 자신의 손발을 묶는 자가당착적인 결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햇볕정책은 과거 대북 강경책의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따라서 그 정책은 과거의 남북한 간의 긴장이 과거 우리 정부의 강경책과 무관하지 않다는 논지를 암묵적으로 전제한다. 그러나 사실은 남북간의 긴장은 장기간에 걸쳐 고착화된 군사적 대결구조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객관적 상황이 어떤 일회적인 선언적 행위나 선의의 표현만으로 해소될 수 없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교육받았다. 그게 아니라면 아마도 교과서는 전부 새로 써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햇볕정책의 결정적 취약성, 즉 비극은 그것의 성공이 오로지 북한의 선의 하나에만 달려있다는 점이다. 무릇 모든 정책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행동이다. 즉 상대의 행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바꿀 수 있도록 유인책과 강압책을 적절히 배합하는 작업이다. 일방적으로 호의를 베풀고 그에 상응하는 선의의 표시를 기다리는 것은 정치도, 정책도 아니다. 특히 엄청난 규모의 군사적 대치를 바탕으로 하는 남북한 관계에서 선의를 기대한다는 것은 당착이다. 어차피 상호간에 선의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엄청난 규모의 군비를 갖추고 있는데 그러한 대결 상대의 선의를 통해 대결구조의 해소를 기대한다는 것은 자기 기만일 수 있다.
남한이 제공하는 물질적 혜택은 다 누리면서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없는데도 변화가 나타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겠다고 하는 판국에 어떻게 북한의 위정자들이 자신의 안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변화를 스스로 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 알 수 없는 일은 국내정치에서는 더 이상 냉혹할 수 없는 소위 고단수의 정치인들이 왜 남북문제에서만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성을 보이는가 하는 점이다.
▼˝포기냐 유지냐˝딜레마▼
최근의 서해교전 사태는 현 정부와 햇볕정책을 엄청난 시험에 처하게 만들었다. 북한의 비협조적 자세로 인해 햇볕정책의 현실성이 의심받고 있다. 그 정책을 고집하자니 북한의 협조를 끌어낼 정책 옵션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정권의 도덕적 기반으로까지 고양된 햇볕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딜레마를 벗어날 수 있는 제3의 방법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금년 말의 선거는 목전에 당도하고 있다. 따라서 그 딜레마는 민주당의 새로운 대선후보에게로 던져지고 있고 그는 아직까지 침묵하고 있다. 어떤 답이 나오든 간에 그에 대한 평가는 유권자인 국민이 할 것이다. 여기에 민주주의의 묘미가 있는 듯 싶다. 이 묘미를 북녘의 동포들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박상섭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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