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기술지상주의는 가라" '고독한 호모디지털'

  • 입력 2002년 7월 5일 17시 55분


◇ 고독한 호모디지털/김열규 지음/342쪽 1만5000원 한길사

◇ 네트워크 혁명, 그 열림과 닫힘/홍성욱 지음/255쪽 1만원 들녘

손오공처럼 단 한번의 손가락 클릭으로 시공간의 자유로운 유희를 즐기는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상적 풍경으로 다가왔다.

카스텔스의 말처럼 현실자체가 현실 가상(real virtuality)이 돼 버린 느낌이다. 네그로폰테의 주장대로 비트가 원자를 대체하면서 모든 견고한 것은 ‘공기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모든 딱딱한 물질은 휘발성의 전자공간으로 사라지며, 문명도 경성(硬性)에서 연성(軟性)의 사회로 변화한다.

변화가 숙명적이라면, 부드럽고 유연한 것이 더 변화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조지 길더의 말대로 ‘물질 폐기’의 경제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전자 가상공간 혁명의 궤적은 1969년 아르파넷에서 시작하여, 1986년 NS네트의 정립, 1994년 넷스케이프 웹 브라우저의 상용화,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사 윈도우의 전지구적 표준화로 이어진다. 문명사적 전회(轉回)의 소용돌이가 너무나 거세기 때문에 이런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들도 어지럽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정보혁명, 제 3의 물결, 지식기반사회, 인터넷 혁명, 세계화….

그러나 ‘네트워크 혁명…’은 이 모든 것을 한데 묶어 주는 핵심 키워드가 바로 ‘네트워크 혁명’이라고 단언한다. 갓 시작하여 예측불가능한 네트워크 혁명의 가장 중요한 기술과 실천은, 사람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네트워킹이며 이것은 동시에 지식의 문제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네트워크 환경의 위력은, 컴퓨터 파워가 18개월마다 두 배 이상 증가한다는 고든 무어의 법칙, 네트워크 가치는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로버트 메트칼피의 법칙, 창조성은 네트워크에 접속돼있는 다양성에 지수함수로 비례한다는 존 카오의 법칙으로 설명된다.

네트워크 혁명과 함께 호모 디지털의 기획이 ‘도둑맞은 미래’를 맞지 않으려면, 인간과 지식의 문제를 진지하게 근본적으로 물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이 전지구적 차원의 전자 거미줄(www)을 구성하고 거대한 지식의 하이퍼텍스트를 형성하는 만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지식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기 때문이다.

홍 교수(캐나다 토론토대)에 따르면 전자공간에서의 비물질화와 ‘무게 없는’ 경제는 새로운 지식의 패러다임을 요구한다. 가공할 속도와 변화의 네트워크 시대에는 지식도 경성(硬性)보다는 연성(軟性) 지식과 암묵적(tacit) 지식이 요청된다. 과거의 지식 패러다임이 사실지(know-what)와 자연과학지식(know-why)과 같은 명백한 지식이나 정보에 기초했다면, 이미 시작된 (피터 드러커의) ‘다음 사회’에는 숙련지(know-how)는 물론, 특히 개별적 창조지식(know-who·누가 무엇을 알고 누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식)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암묵적 창조지는 스스로 재교육하는 능력이자,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숙련과 능력에 더 가깝다. 미래의 진정한 지식경영인은 범람하는 중저급 데이터와 정보를 비판적으로 걸러내 독창적인 것으로 만드는 (역설적이게도) ‘인문적’ 지식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창조적 암묵적 지식은 자폐증에 가까운 상황에서 숙성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진정한 토론과 의견교환에서 싹튼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네트워크 혁명시대의 화두는 상호연관과 상호의존, 그리고 상생(相生)적 가치가 중시되는 인간과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홍 교수는 컴퓨터 혁명은 컴퓨터 계산 능력만을, 인터넷 혁명은 인터넷 기술팽창만을 강조했고 정보나 지식혁명은 진정한 지식과 허드레 정보를 혼동하게 만들었으며, 세계화는 인간이 빠져버린 추상적이고 차가운 개념이라고 질타한다.

그리고 단순한 기술결정론에 근거한 ‘변화에 적응 못하면 죽음’이란 폭력적인 구호도 단호히 거부한다. 기술이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변화하고 인간은 그 변화에 숙명적으로 이끌릴 수밖에 없다는 위협적인 수사를 거부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희망의 싹을 발견한다.

이제 네트워크 혁명의 화두는 기술지상주의가 아니라 다시 인간, 새롭게 태어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테크노디스토피아와 자폐증적인 호모 디지털을 넘어서려면 인간 자체의 성숙과 사람 사이의 품격 있고 투명한 신뢰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02년 월드컵 열기에서 느꼈듯이, 인간 네트워크 상의 트러스트가 형성되지 않고는 디지털도 하나의 메마른 추상적 개념에 불과하다.

차가운 디지털과 따뜻한 인간 얼굴의 결합은 홍 교수의 ‘네트워크 혁명’이 김 교수(인제대)의 ‘고독한 호모 디지털’과 교차하는 맥락이기도 하다.

‘네트워크 혁명’은 균형 잡힌 감각으로 새로운 시대의 열림과 닫힘을 정확히 짚어내는 데 비해 ‘고독한 호모 디지털’은 네트워크 혁명이 자칫 환상과 미망일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고독한 호모 디지털’의 저자가 개인의 책무를 중시하는 레비나스의 타자성의 철학을 강조하면서 ‘네트워크 혁명’의 상생과 ‘네트워킹’의 윤리에 화답하는 대목에서 인문적 비전과 첨단 과학기술의 극적인 만남이 이뤄진다.

성찰적 사유가 배어나는 ‘네트워크 혁명’은 식상한 기술결정론이나 추상화된 경영학 담론과의 차별화를 꾀하는 데 비해, ‘고독한 호모 디지털’은 재치 넘치는 간결과 압축의 문체로 20세기 이른바 ‘언어적 전회’ 이후 인문사회학의 지형을 꼼꼼히 그려 가는 모습에서, 독자는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서유기’적 체험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김 동 윤 건국대 교수·불문학 aixprce@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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