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에서 하루 밤 묵은 이들은 해질 무렵부터 삼경이 가까운 늦은 밤까지 간간이 들리는 어떤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얼핏 들으면 동네 골목에서 두부 파는 아저씨가 ‘딸랑∼딸랑’ 흔드는 종소리 같기도 한 소리다.
해인사에는 야순(夜巡)이라는 제도가 있다. 밤에 스님들이 도량을 순찰하는 일을 말한다. 이 일은 1년 365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경찰이 순찰 돌 듯 스님네들이 번갈아 가며 해 오고 있다. 이 제도가 언제부터 정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해인사의 성보(聖寶)를 스스로 지키기 위한 방범의 한 형태임은 틀림없다.
밤 이슬을 맞고 절 담을 넘어온 도둑이 있다면 야순 종소리를 듣고 마음을 돌리고 산을 내려가라는 경종의 의미도 담겨 있다. 도둑을 잡으려 하지 않고 쫓아내려고 했던 옛 스님들의 지혜가 참 놀랍다. 정말 도둑을 제도하는 일은, 수갑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투도심(偸盜心)을 없애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야순의 차례가 오면 요령처럼 만든 종을 흔드는데, 이 또한 원칙이 있다. 마구 흔드는 것이 아니라 오십 보 정도를 걸은 다음, 일정한 장소에서 세 번 정도 소리를 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을 어기고 두부 장수 마냥 마구 흔들다가 혼이 난 스님들도 많다. 아무튼 야순의 소임은 문단속을 하고 아궁이의 불씨를 확인하고 밤늦게 드나드는 사람들을 살핀다.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장경각 한쪽에 작은 초소 같은 집이 한 채 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이 집은 야순을 맡은 스님이 24시간 근무하는 경비실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특히 야순을 하다가 잠시 몸을 녹이기도 하던 장소였다. 그러나 화재의 위험 때문에 난방은 철저히 금지되고 있었다.
입적하신 성철 스님은 야순을 잘 하는지 암행을 자주 하신 것으로 유명하다. 어느 해 겨울 어느 학인 스님이 야순을 하고 있다 어른 스님들 몰래 아궁이에 장작을 몇 개 넣었던가 보다. 그러다가 그만 암행을 하시던 성철 스님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한차례 혼쭐이 난 학인 스님이 저만치 걸어가는 성철 스님을 향해 한마디 던진 말이 걸작이다.
“입을 만들었으면 밥을 주어야지요.”
입이 아궁이라면, 밥은 장작을 말한다. 초참(初參) 학인이 대선사(大禪師)에게 던진 일갈치고는 상당한 수준의 선문답에 가깝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성철 스님은 별다른 말씀이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선사의 대구(對句)는 다음 날 아침에 전해졌다. 날이 밝자마자 인부들을 시켜 아궁이를 진흙으로 봉해 버린 것이다. 그 날 아침, 차도 마시고 한담도 나누는 절집의 휴게실격인 지대방에서는 성철 스님의 행동은 아궁이를 막은 것이 아니라 학인의 입을 막아버린 것이라는 논평이 이어졌다.
정말 무엇을 막아버린 것일까.
해인사 포교국장·budda12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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