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수기자의 장외홈런]KBO의 ‘착각’

  • 입력 2002년 7월 8일 18시 25분


월드컵 축구 열기가 전국을 강타했던 6월. 온 국민이 한국 축구의 기적에 열광했지만 예외지대는 엄연히 있었다. 대표적인 곳중 하나가 한국야구위원회(KBO). 대한축구협회와 함께 국내 스포츠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이 곳에선 12번째 전사인 붉은 악마가 들으면 몽둥이를 들고 뛰어올 만한, 적나라한 대화가 버젓이 오가고 있었다.

“한국 축구가 어떻게 4강에 오른단 말이야? 교과서에도 실린다구? 이건 오히려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야.”

“맞아. 만약 다른 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렸다고 해도 우리가 4강에 올랐을까? 16강 진출도 어려웠을지 몰라.”

“로이터 통신이 이번 월드컵 최대의 오심을 스페인이 한국과의 8강전 연장전에서 넣었으나 인정받지 못한 골을 선정한 것 알지? 그건 왜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는 건지 몰라.”

“월드컵 16강이 병역 면제 혜택을 받는다면 타 종목의 올림픽 입상자들은 뭐야?”

아무리 축구의 ‘맞은 편’에 있는 KBO라지만 사무처 직원과 야구기자들이 나누는 대화는 어느새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거리 응원도 문제가 많아. 밤새 그게 뭐야. 아무리 월드컵이 국민 축제라지만 우리가 언제 그렇게 열정적인 민족이었어? 도로를 막아버리면 그곳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

“그래봤자 월드컵 끝나고 일주일이 고비야. 한달간 붉은 옷만 입었던 팬들은 야구장으로 돌아오게 될 거야. 프로축구는 다시 파리만 날리겠지.”

지난달 KBO에서 펼쳐진 열띤 토론의 주역중 한 사람이었던 기자가 굳이 이를 공개하는 이유는 이렇다.

그동안 KBO를 비롯한 야구인들은 이분법적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가장 많은 팬을 확보한 국민 스포츠는 야구라는 것부터 시작해 스타의 상품성과 리그를 운영하는 효율성, 종목의 세계적 경쟁력, 유료 관중수 등 모든 면에서 앞서 있다는 상대적 우월감이 그것이다.

하지만 야구인들의 편견은 보기 좋게 깨지고 말았다. 프로축구는 월드컵 폐막후 일주일만인 7일 개막전에서 사상 최대인 12만3189명의 관중을 동원, ‘CU@K리그’의 결집된 힘을 만천하에 알렸다. 프로야구는 기존의 구장 시설로는 죽었다 깨나도 동원하지 못할 관중수였다.

홈 팀의 유리함이 작용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축구는 세계 4강의 위업을 이뤘다. 과연 야구는 메이저리거들이 모두 참가하는 진정한 의미의 월드컵 대회가 열릴 경우 중남미 국가를 이겨내고 4강에 이름을 올릴 수나 있을까. 이제 야구인들은 하루빨리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12번째 전사가 10번타자로 돌아올 그날까지….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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