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눈에 띄는 변화는 출산율의 급격한 감소로 대변되는 이른바 ‘출산 파업(베이비 스트라이크)’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출산 파업’이라 함은 직장생활과 자녀양육의 병행이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경우, 여성들 편에서 출산 연기 및 기피 전략을 선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마이너스 인구 성장률을 기록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가족붕괴 현상 사회가 외면▼
우리나라에서도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출산 파업의 징후는 향후 국가적 차원의 노동력 수급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려니와 빠른 속도로 진입해 가고 있는 ‘고령사회’의 문 앞에서 부양비 부담의 증가라는 심각한 사회문제의 가능성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문제다. ‘가족친화적 정책’을 통해 출산 및 보육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줌으로써 출산율 증가 효과를 보고 있는 서구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도 국가 및 기업 차원에서 취업과 보육의 문제를 조화롭게 양립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이고 실효성 높은 정책 개발이 요망된다.
둘째, 이혼 및 재혼율의 증가로 대변되는 우리 가족의 안정성이 상당 부분 약화되면서 동시에 한 부모 가족, 재혼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 양식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전히 ‘정상가족 규범’을 고수하고 있는 기존의 가족법 및 가족정책으로 인해 가족 현실은 앞서가는데 사회적 지원체계는 이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일종의 지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다양한 형태로 이합집산을 거듭해가고 있는 가족 현실에 주목해 각각의 가족이 필요로 하는 사회적 지원프로그램의 세분화 및 전문화를 도모함은 물론 사회적 차원에서도 다원화된 가족 가치 및 유연한 가족 모델의 정립이 요구된다.
셋째, 여성의 경제활동을 두고 양적 확대와 질적 향상간 괴리가 별로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례로 여성의 취업률 증가 이면에는 비정규직 및 파트타임직의 증가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여성 노동자는 불황시 우선 해고대상이 되고 호황시 최후 고용대상이 되는 산업 예비군에 그치는 현실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통계청 자료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여성 노동자의 평균 임금 수준은 남성의 64.3%에 머물러 있다. 이들 성별 임금격차는 많은 부분 남녀간 학력차 및 직종차로 설명되나 동시에 순수한 차별적 요인에 의한 것이 약 30%에 이른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일터에서는 법적 제도적 차원에서 명백하게 여성을 차별하는 일은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그러나 선진국 수준인 법과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는 다분히 후진국 수준에서 운용되고 있고, 연고주의와 비공식적 네트워크가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한국적 기업문화는 여성에게 매우 불리한 환경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앞으로 예산 확보에서부터 법 자체의 실효성 제고 방안에 이르기까지 여성 관련 법과 제도가 실제 현장에서 내실있게 운용될 수 있도록 구체적 방안이 폭넓게 검토돼야 한다.함은 물론, 일상 수준에서 작동하고 있는 남성중심적 구조를 남녀평등적 문화로 승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여성 할당제´ 확대해야▼
마지막으로 세계 중상위권에 머물고 있는 여성의 교육 수준 및 취업률에 비해 여성의 ‘권한 지위’, 즉 정치적 지위가 항상 세계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음은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여성의 정치적 지위와 경제·사회적 지위간의 괴리는 모든 삶의 영역에 정치적 영향력이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여성이 이룬 성과의 상당 부분을 유명무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과정상의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한시적 장치인 ‘여성 할당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제도화함은 물론 주요 정책결정이 이루어지는 모든 부문에 할당제를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
유엔은 일찍이 여성의 잠재력 활용에 국가 발전의 성패가 달려있음을 간파한 바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어가는데 있어서 여성 인력 활용이 최대의 관건임이 전망되고 있다. 여성의 경쟁력을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가는 노력을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된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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