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만난 윤호진(54·尹浩鎭·사진) 에이콤 인터내셔널 대표의 얼굴은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한국 뮤지컬 ‘명성황후’로 미국 영국에서 인지도를 높였기 때문일까. 그는 11월15일∼12월5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새 뮤지컬 ‘몽유도원도’의 밑그림을 기자에게 처음으로 공개했다.
“한 폭의 산수화가 입체적으로 살아난다고나 할까요. 음악은 ‘명성황후’의 양인자 김희갑 부부가 다시 맡습니다. 8월말에 주요 출연진 오디션을 마무리한 뒤 9월초부터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야죠. 총 제작비는 20억원 정도 들것 같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의 회전무대를 만들었던 호주의 아들레이드사에 바닥 장치를 의뢰한 상태입니다.”
‘몽유도원도’는 조선 전기의 화가 안견(安堅)이 1447년(세종 29년)에 그린 산수화. 안평대군이 꿈 속에서 놀았던 도원의 풍경을 안견에게 말해 3일만에 완성한 작품으로 현실 세계와 도원 세계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윤 대표가 뮤지컬로 그리려는 ‘몽유도원도’는 안견의 그림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명성황후’는 역사 속의 인물을 다시 끄집어 낸다는 의미였던 반면 ‘몽유도원도’는 탐미적이고 진정한 러브 스토리여서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느낌이 옵니다. 삼국사기에 짧게 나온 이야기와 최인호씨의 동명소설을 재구성하고 있어요.”
‘몽유도원도’는 이미 해외에서 관심의 대상이다. 캐나다의 머비쉬 프로덕션 관계자들은 이 작품의 시높시스를 보고 현지 공연을 제안한 상태. 윤 대표는 한국에서 수차례 공연을 하며 작품을 다듬은 뒤 일본 캐나다 호주에 이어 최종적으로 미국 브로드웨이에 진출하겠다는 야심찬 청사진을 내비쳤다.
“‘명성황후’는 전초전이었고 시행착오도 많았죠. 하지만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몽유도원도를 국제시장에서 당당하게 겨룰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또 하나의 여정이 시작된 셈이죠.”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뮤지컬 '몽유도원도' 스토리
윤호진 대표가 구상중인 ‘몽유도원도’는 총 2막18장, 2시간 30분에 이르는 대작이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몽유도원도’ 공연이 한창이다. 그가 펼쳐낼 ‘몽유도원도’ 줄거리를 알아본다.
백제 4대 왕인 개루왕(재위 128∼166)은 고구려와 전쟁을 치르다 화살에 맞지만 아랑의 도움으로 살아나는 꿈을 꾼다(무대 위에는 자욱한 연기와 쓰러져 있는 말이 전쟁터의 치열한 상황을 표현).
부하 향실과 채홍사를 동원해 아랑을 찾아내지만 도미의 정혼자(삼국사기에는 아내로 나와있다)임을 알게 된 개루왕은 도미와 바둑 대결을 벌인다(백과 흑을 둘때마다 코러스가 등장). 결국 내기 바둑에서 승리한 개루왕은 아랑에게 수청을 들게 하지만 아랑의 시녀인 비아가 대신 들어갔다가 죽음을 맞는다.
도미 역시 두눈에 침을 맞아 봉사가 되고 피리 하나만 들고 쪽배에 실려 어디론가 흘러간다(아랑이 쪽배를 따라가며 구슬픈 노래를 부른다).
향실은 남편을 한없이 그리워하는 아랑을 놓아준다. 우연히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게된 아랑은 자신의 얼굴이 비극의 원인이라고 생각해 갈대로 얼굴을 긋고 모래로 비벼버린다(아랑이 자신의 얼굴을 망가트리는 모습을 해금의 찢어질 듯한 소리로 묘사).
봉사와 추녀가 된 도미와 아랑은 다시 만나 서로의 진실한 사랑을 확인한다(두사람은 노을 속으로 떠나며 애잔한 아리아를 합창).
뒤따라온 개루왕은 추한 얼굴로 변해버린 아랑에 충격을 받아 자결한다 (절규하는 개루왕의 모습이 클로즈업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