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권 말기의 '교통 사면' 신중해야

  • 입력 2002년 7월 9일 19시 04분


사면권 행사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법과 질서를 성실하게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형평성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교통법 위반자에 대한 정부의 사면 조치는 황당한 느낌을 준다. 도무지 합당한 명분과 계기를 찾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월드컵 성공을 계기로 국민화합 차원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지만 ‘월드컵 성공’과 ‘교통사범 구제’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은 정부 관계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모든 사면조치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경우 시점으로 볼 때 8·8 재·보선과 대통령선거를 앞둔 선심용이라고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교통법 위반자에 대한 사면 조치는 김영삼 대통령 시절이었던 95년 광복 50주년에 있었고 김대중 대통령 취임후에는 98년과 이번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지난 7년동안 수백만명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사면조치가 3번이나 있었던 셈이다. 95년에는 건국이래 최대인원인 594만명이, 98년에는 532만명이 각각 사면돼 경찰서마다 후속조치로 난리법석을 치렀고 이번에는 481만명이 사면 대상에 올라 있다. 이러니 정권 말기에 사면권을 남용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반복되는 사면 조치로 인해 운전자 사이에 ‘교통 법규는 지키는 게 손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현상이다. 이번 사면이 있기 전에 일부 운전자들은 “연말 대통령선거가 끝나면 또 사면조치가 있을 것”이라며 교통법규 위반에 따른 벌점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나라는 난폭 운전과 높은 사고율 등 교통 질서에 관한 한 내세울 게 없는 교통후진국으로 꼽힌다. 정부가 앞장서서 교통법규 준수를 호소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오히려 이를 부채질하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것도 그 동기의 순수성을 의심받는 상황에서 말이다. 과연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정부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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