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산을 처음보고 경외감에 부르르 떨었다."
성경은 모세산(山)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집트 시나이 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모세산은 태양이 이글거리는 사막 한가운데 솟아 있다. 사막을 딛고 선 탓에 나무는 커녕 풀 한 포기도 제대로 찾기 어려운 돌산이다.
식생(植生)을 허용치 않는 돌산은 이방인들에겐 일견 낯설기 짝이 없다. 2272m인 산 정상은 늙은 도사견의 이마에 난 주름 같은 능선에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한 프랑스 화가는 이곳을 "바위로 변해버린 성난 파도"라고 묘사했다. 화강암이 붉게 산화(酸化)한 탓에 바위들은 붉거나 잿빛이다.
모세산은 성산(聖山)이다. 기원전 1250년경 이집트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었던 출애굽의 선지자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10계명을 받았다는 곳이 바로 이 산이다. 시나이 반도에 위치한다고 '시내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7월초순 새벽 2시. 관광버스에서 내린 관광객과 순례자 100여명이 사막의 새벽공기를 가르며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산행을 시작하는 가벼운 흥분은 찾아볼 수 없다.모두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는 듯 경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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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탄생 이전의 세계를 담고있는 성경의 구약(舊約)편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함께 믿는 약속의 말씀이다. 전쟁을 불사하는 종교간 갈등이 끊이지 않지만 적어도 모세산에서 만큼은 모두가 하나다. 정상에는 바위 사이로 예배당, 회교사원이 공존하고 있다. 황량하기 짝이 없는 모세산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네시간 쯤 지났을까. 봉우리 너머에서 태양이 고개를 내민다. 정상에 오른 기쁨을 나누던 사람들은 왁자지껄한 감탄사 대신 조용히 눈을 감는다. 산은 사람의 고개를 떨구게 하는 힘을 지녔다.
새벽의 모세산이 관광객의 몫이라면, 기온이 40도를 오르내리는 한낮의 모세산은 반(半)유목민인 베두인족(族)이 지배한다. 관광 가이드라며 영어로 된 명함까지 내미는 할람 아부릴은 이틀에 한번 꼴로 새벽 산을 등반한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알라신에게 고백할 일이 생기면 '텅 빈' 정상을 찾아 낮 시간에 오른다"고 말했다. 산자락의 카타리나 수도원의 신부님들도 한낮의 산속 수행을 즐긴다.
수천년을 시나이반도에서 사막생활을 해 온 베두인족은 모세산을 삶과 동일시한다.솔리만 마무드는 모세산 주변에 사는 5만여 베두인족 가운데 유일한 대학졸업자다. 몇 년전부터 6∼12세 어린이가 뒤섞인 40명짜리 학급에서 영어와 지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마무드는 "산 밑 마을에서 태어났고, 학교에서 볼펜으로 처음 그린 그림도 모세산이고, 친구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도 산의 위대함이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 모세산은 필요한 모든 것을 쥐어주는 어머니같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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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두인의 삶은 도시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나 있다. 사막의 돌산 기슭에 염소가죽 천막을 치고 사는 이들에게 문명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부질없다. 학생들은 교실에서 "문명을 깨우쳐라"는 가르침을 듣지 못한다. 대대로 살아온 사막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갈 방식을 배울 따름이다.
아스마일 살렘(13)은 모세산에서 몇 km 떨어진 '파흐란' 오아시스에 살고 있다. 아스마일에겐 지하수에 뿌리를 내린 대추야자 유칼립투스 1만여그루 가 자라는 오아시스와 주변 돌산이 세상의 전부인 듯 했다. 날카로운 돌산을 맨발로 뛰어다니던 그는 "장래희망이 뭐냐"는 질문에 뾰족한 답을 하지 않았다. 현지 가이드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베두인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최근 '개화한' 이집트인들이 모세산의 경제적 가치에 눈을 뜨면서 이곳에는 삶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도회지 출신인 이집트인들은 모세산 기슭에 호텔을 지었고, 현대식 상점들을 열었다. 자본의 칼날이 신령스런 산과 그 아래에 사는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그러는 동안 삶의 근간인 지하수 물줄기가 메말라가기 시작했다. 호텔들이 사막 속 수영장을 물로 채우고, 샤워물로 쓰기 위해 지하수를 마구 끌어다 쓴 탓이다.
모세산이 키워낸 베두인족 젊은이들은 새로운 도전을 마주하고 있다. 자본과 개발, 늘어난 관광객은 베두인식 생각법을 버리고 고향을 떠날 것을 부추기고 있다. 하루 종일 천막아래서 꼼짝도 않고 관광객들을 응시하는 베두인족 노인들의 시선은 그래서 더욱 불안해 보인다.그 시선은 개발 앞에서 위협당하고 있는 성산과 그곳 사람들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듯 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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