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흔히 당신의 주인이라고 일컬어진다. 아니, 이것은 당신 그 자체일수도 있다. 당신의 매력적인 눈과 귀, 우아한 손과 다리는 이것의 명령을 따르는 ‘인터페이스(입출력장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비슷하게나마 그것을 보고 싶다면 두 주먹을 쥐고 마주 대보라. 거의 같은 크기에 모양마저 닮은 ‘주인’이 당신 머리 속에 들어있다. 그 이름은 번역된 책의 제목과 같다.
과학적 지식과 문학적 상상력을 결합하며 대중적 인기를 누려온 ‘개미’ ‘타나토노트’의 작가 베르베르가 새로운 장편 소설을 내놓았다.
한국어판 번역자와의 대담에서 그는 밝히고 있다. 이전 장편인 ‘아버지들의 아버지’에서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다뤘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우리는 누구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우리의 ‘누구임’을 규명하기 위해 작가는 인간의 연산회로인 이 대칭형 분홍색 우주를 손에 들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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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긴밀한 인과 관계로 연결돼 있으면서 시간차를 지닌 세 가지 사건을 축으로 진행된다. 먼저 저명한 신경정신 의학자 사뮈엘 핀처. 수퍼컴퓨터 딥 블루 IV를 꺾고 세계 체스 챔피언이 되지만 그날밤 약혼자인 모델 나타샤와 잠자리를 함께하던 중 급사한다.
이어 장면은 교통사고로 신체 기능을 잃은 전직 은행가 마르탱에게로 옮겨간다. 차에 들이받힌 뒤 대부분의 감각과 운동능력을 상실하고 사고력과 시력, 청력의 일부만을 소유하게 된 그는 핀처 박사의 도움으로 컴퓨터와 연결되고, 급기야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의 정보망을 넘나들게 된다.
전작 ‘아버지들의 아버지’에 등장했던 미모의 주간지 과학부 기자 뤼크레스와 탐정 이지도르가 핀처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추적하고 나서면서 독자의 추리력을 시험하는 갖가지 복선과 상징이 동원된다. 두뇌에 대한 최신 과학 지식이 말랑말랑, 소화하기 쉬운 형태로 제공되는 것은 물론, 자연지능과 인공지능을 가르는 차이는 무엇인가? 컴퓨터도 욕망을 가질 수 있는가? 웃음과 유머의 정체는 무엇인가? 등등 인지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숙고(熟考)의 메뉴도 제법 풍성하다.
꼬투리를 잡자면, 아이디어에 비해 ‘디테일’이 약한 베르베르의 결점이 이번 책에서도 자주 발견된다는 것. 문학적 완성도를 높이 사는 독자의 눈에만 띄는 약점이 아니다. 손바닥에 숨겼다가 한 장씩 꺼내놓을 수 있는 정보들을 한꺼번에 쏟아놓아 숨을 가쁘게 하거나, 이후 수십 페이지에 걸쳐 중요한 단서가 될 복선들을 성급히 내밀어 줄거리의 스텝이 엉키기도 한다. “나는 문체보다는 새로운 발상과 정보를 우위에 둔다. 약점을 보완하기보다는 장점을 강화하고 싶다”는 저자의 말로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삼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 베르베르는 최근 단편영화 ‘나전 여왕’을 감독, 영화계에 데뷔했다. “할 수만 있다면 ‘뇌’도 영화화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내가 직접 감독을 맡으면 더욱 좋겠다”고 그는 밝혔다. 아닌 게 아니라 세 개의 축으로 얽혀드는 긴박한 줄거리와 극적인 장면묘사는 영화화된 이 소설에 대한 기대치를 높여주고 있다. 한국에 유독 고정팬이 많은 저자는 17일 내한, 1주일간 팬사인회와 인터뷰 등 새 책 홍보활동을 펼칠 예정.
원제는 ‘L’Ultime Secret(마지막 비밀)’로, 책속에서 이 용어는 인간의 쾌감을 관장하는 두뇌영역을 뜻한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