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동방기독교와 동서문명´

  • 입력 2002년 7월 12일 18시 21분


◇동방기독교와 동서문명/김호동 지음/325쪽 1만2000원 까치

지금으로부터 꼭 8년 전, 필자가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다가 네스토리우스교(동방기독교·경교·景敎)의 동전(東傳)에 관해 약간 언급했는데, 한 수강생이 매우 의아해하면서 이것저것 물어왔다. 알고 보니 그는 신학대학 졸업생으로 대학시절에는 이단시된 이 교파에 관해서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고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일은 필자가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 비문의 초역을 시도하면서 동방기독교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됐다. 그러나 얕은 지식으로는 초역도 탐구도 제대로 되지 않아 여간 고민이 아니었다.

또 4∼5년 전에는 문명교류사의 첫 고전격인 ‘중국과 중국으로의 길’(1866)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참고서로 중세 유럽 문단에 큰 파문을 던진 ‘몽더빌 여행기’(1371)를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프레스터 존(Prester John·사제왕 요한)에 관한 전설적인 기사에 접했다. 나름대로 주를 달면서 그가 카라키타이의 야율대석이란 견해는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는 등 엉뚱한 풀이를 했다.

▼이단교파 활동 생생히 기술▼

이런 ‘고민’이나 ‘엉뚱한 풀이’는 다행히도 이번 김호동 교수(서울대 동양사학과)의 저서에 의해 시원스러운 결단을 봤다. 김 교수의 학덕과 노고에 진심으로 경의와 고마움을 표한다.

이 책은 서방기독교와는 궤를 달리 한 동방기독교의 영광과 고난에 찬 1000여 년의 긴 역사를 명료하고도 흥미진진하게 엮어낸 명저다. 저자는 네스토리우스교의 동전(東傳)상, 특히 당(唐)대 중국에서의 150년간 전도상과 몽골제국 치하의 몽골리아와 중국에서 활력을 되찾은 이 교파의 활동상을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때 서구인들을 크게 흥분시켰던 이른바 동방 ‘요한 왕국’과 그 주재자 요한의 실체를 설득력 있게 밝혀내고 있다. 그리고 주·객관적 요인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쇠퇴 몰락하게 되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 책은 풍부한 사료와 예리한 분석에 기초해 역사의 진위를 가려낸 전범서(典範書)다. 사실 역사 서술에서 사실(史實)의 진위를 가려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위(僞)’는 왕왕 ‘진(眞)’보다 ‘몇 배의 정력’으로 포장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카르피니, 루브룩, 마르코 폴로, 몬데코르비노, 오로릭 등 당대 동방 여행가들이 남긴 숱한 여행기 등 사료를 전거를 통해, 수백 년 동안 환상과 억측 속에 가려있던 사제왕 요한의 실체가 몽골 초원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케레이트나 웅구트 같은 유목민집단들의 수령이라고 그 진위를 가려냈다. 그 ‘요한’은 징기스칸과의 전투에서 피살되다 보니 그렇게 고대하던 서구인들 앞에 나타날 리 만무했다.

또한 저자는 ‘경교비’의 비문과 한역된 경전들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통해 경교가 기독교의 본연을 따르고 있음을 입증하고, 네수토리우스가 “하나님이 젖을 먹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한 말을 “나는 젖먹이 어린아이를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없다!”라고 말한 것처럼 왜곡해 그를 이단으로 몰아붙인 식(p.93)의 곡필과 허상도 소상히 밝혀냈다. 이제 더 이상 경교는 이단이 아니다. 요컨대 경교에 관한 한 이 책은 전범이다.

▼동방기독교 1000년사 복원▼

다음으로 이 책은 실사구시의 탐구서다. 환언하면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근거해 명제를 탐구해내고 있다. 김 교수는 역사가로서의 호기심 외에도 종교적 동기에서 동방기독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그는 상상을 뛰어넘는 엄청난 수난 속에서도 생기를 이어가는 1000여 년의 장도를 정열적으로 추적해 원상을 복원해 놨다. 그러나 사제들의 무당 같은 주술적 행각, 몽골 칸들에 대한 교도들의 아전인수격 환상, 권력자에 대한 아부, 타종교에 대한 영합이나 변신 등 파행에 대해서는 신랄한 평가를 내림으로써 동방기독교의 사전(私傳)과 공전(公傳) 및 그에 따르는 접변이나 문명교류사적 기여 등에 관해 균형 잡힌 명제를 제시하고 있다.

최대한의 동서양 문헌자료를 두루 망라한 331항의 별주를 통해 내용의 확실성을 담보하고 이해를 심화시키며, 여러 가지 적중한 표현으로 내용에 대한 저자의 신빙도를 확실히 하고 있다. 소수의 관점, 이단의 시각, 주변의 입장에서 찌들고 주눅이 든 다수와 정통 및 중심을 예리하게 관조하고 과감하게 파헤친 저자의 탐구정신은 한껏 돋보인다.

▼국제적 학술저서로 손색없어▼

이 책은 또한 그 유려한 문장이 일품이다. 특히 여러 가지 언어로 된 원전의 번역문은 완벽에 가깝다. 저자의 뛰어난 다국어 소화 능력이 유감 없이 발휘됐다. 음사어(音寫語)에 원어를 꼼꼼히 붙여주고 뜻까지 알려주는 치밀한 학구적 태도는 학인 모두가 본받을 바다.

이런 명저를 ‘말 타고 꽃구경’하는 식으로 한번 훑어보고 서평을 쓴다는 것부터가 외람되기는 하나, 이 책은 국제적 수준의 학술저서임에는 손색이 없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우리의 학문을 국제화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명저는 의당 외국어로 역수출되어 국제학계에 선보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은 동방기독교를 이단시하거나 그 연구에 관해 쉬쉬하는 국내 학계에 개안의 계기와 논의의 장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는 데서도 큰 의미를 찾아본다. 국내에 경교 관련 학위논문이 발표됐고 동방기독교의 전래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유물들도 발굴되었는가 하면, 써놓은 간판을 내다 걸지도 못한 채 경교 연구기관이 운영되고 있는 사정을 감안할 때, 이 책이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거니와, 김 교수께서 그 연구를 선도해 주리라 기대한다.

정수일 전 단국대 교수·동양사 yeoyu51@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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