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들여 키워온 회사가 부도 위기에 몰리게 되면 경영진은 물론 종업원들도 “한번만 기회를 주면 회사를 살려 보겠다”며 눈물로 호소한다. 하지만 은행 실무자들은 “가슴이 미어지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난주 대검 중수부의 김홍업씨 수사결과 발표에서 드러난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의 기업구조조정관(觀)은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던 엄정성 공평성과는 동떨어져 있다.
검찰이 밝힌 전후 사정은 이렇다. 성원건설은 99년 봄 부도난 뒤 법원에 화의신청을 했다. 이 회사 전윤수 회장은 홍업씨 측근인 김성환씨에게 돈을 싸들고 찾아가 “화의허가가 빨리 나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성원건설의 최대 채권자는 대한종금이었다. 대한종금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부실 금융회사로 예보가 파산관재인을 파견해 놓은 곳.파산관재인의 판단이 회사를 정리하고 손실을 더 이상 키우지 않을 것인지, 손실 증가를 무릅쓰고 다시 한번 회생 기회를 줄지를 결정짓는 상황이었다. 파산관재인은 “회생 가능성이 없다”며 화의에 반대했다.
그러나 대통령 처조카인 이형택 당시 예보 전무는 파산관재인에게 수 차례 전화해 “성원건설이 망하면 결국 공적자금도 날리게 된다”는 억지 논리를 들이댔다. 결국 버티던 실무자는 재검토 후 화의에 동의했다.
이 전무는 한 발 더 나아가 고종사촌동생인 홍업씨와 동석한 자리에 실무자를 부른 뒤 채무탕감을 ‘지시’했다. 대한종금은 성원건설에 대출금 가운데 3300억원을 깎아줬다.
화의에 들어가면 부채탕감은 흔히 있는 절차. 하지만 그것이 실무자의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라 외부 압력 때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전무는 ‘살아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면 고통스럽지만 가차없이 채권을 회수해야 한다는 기업구조조정의 기본원칙을 무시했다.
성원건설은 거금을 건네며 청탁하고 실력자는 실무자에게 압력을 넣던 그 순간 다른 부실기업들은 간판을 내리고 있었다. 파산한 기업이 성원건설과 달랐던 점이라면 ‘김홍업-이형택’을 사귀지 못했다는 점이다.
김승련기자 경제부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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