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크 대통령의 성공은 ‘드골 모시기’에서 시작됐다. 그는 67년 고향에서 드골파 후보로 출마해 처음으로 하원의원이 됐고 76년에는 신드골주의를 주창하며 공화국연합(RPR)을 창당해 우파 최고의 지도자로 부상했다. 드골의 후계자를 자임한 것이 그의 가장 확실한 정치적 자산이지만 훤칠한 외모, 불을 뿜는 듯한 탁월한 연설능력 등 정치인으로서의 개인적 매력이 없었으면 지금의 영광을 누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시라크 대통령은 불리하면 몸을 굽히고 기회를 찾는 노회한 처세술까지 갖췄다. 대선에서 미테랑에게 두 번이나 패했으나 그 밑에서 총리를 지내며 영광의 날을 기다린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시라크 대통령에게는 하나가 더 있다. 바로 행운이다. 그는 팽팽한 접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 지난번 대선에서 의외로 손쉬운 승리를 거뒀다. 1차투표에서 좌파 후보의 난립으로 힘겨운 상대였던 리오넬 조스팽 사회당 후보가 나가떨어졌고 결선투표에서는 극우파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좌파 유권자까지 똘똘 뭉쳐 그를 지지하는 바람에 여유 있게 재선에 성공했다. 이어 실시된 총선에서 우파가 압승을 거두자 시라크 대통령에게는 ‘프랑스에서 가장 운 좋은 정치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극우파 청년이 프랑스 최대 국경일인 14일 파리시내 샹젤리제 거리에서 진행된 군사 퍼레이드 도중 시라크 대통령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사건도 그의 행운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해마다 7월14일이 되면 퍼레이드를 구경하기 위해 수십만명의 인파가 샹젤리제에 몰려든다. 수많은 경찰이 배치되지만 가로수에까지 까맣게 매달리는 구경꾼들을 일일이 감시하기는 불가능하다. 실제로 범인은 불과 40∼50m 떨어진 곳에서 시라크 대통령을 향해 소총을 발사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능력을 갖춘 지도자가 행운까지 몰고 다닌다면 싫어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행운이 곧 국가와 국민의 행운이 아닌가.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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