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는 방송으로 통한다˝▼
음반산업 관계자들은 검찰의 전면 수사에 당혹해하고 있다. 가뜩이나 불황에 시달리는 대중음악 시장이 이번 사태로 인해 회복 불가능한 뇌사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방송계의 대응 역시 한탄조로 들린다. 몇몇 PD들의 개인비리를 전체의 비리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항변하지만, 수사의 방향은 이미 구조적 유착관계의 실체를 밝히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화연대는 작년부터 독점적인 음반기획사와 방송사의 유착 의혹을 제기했고 올 초에 제보자의 PR비 내용들을 검찰에 제보하면서 강력한 수사를 촉구했었다. 우리가 받은 PR비 내용들은 방송과 언론매체 전반에 걸쳐 자행된 전방위 로비 성격이 강했고, 돈의 규모나 청탁의 수위가 대중음악판 자체를 왜곡시킬 만한 것이었다. 90년대 이래 대중음악 시장의 기형적 성장의 배경은 한마디로 방송권력과 독점기획사의 ‘잘못된 만남’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90년대 들어 공중파 방송은 가요시장의 판도를 좌지우지하는 절대권력으로 등장했다. 스포츠연예지와 케이블 음악채널도 한몫 거들긴 했지만, 모든 로비의 길은 ‘공중파 방송’으로 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음악프로그램과 쇼 오락 프로그램들을 보면 특정 기획사의 가수들이 마치 누가 시간표를 짜주듯이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방송에 출연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가요순위 프로그램은 독점 기획사의 몇몇 가수들이 순번에 따라 자기가 1위로 등극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정 소속 기획사의 아이돌 스타들이 특정 오락프로그램의 진행을 독식하고 특정 가수들의 뮤직비디오가 프로그램의 ‘커튼 콜’처럼 집중 방영된다. 일례로 음악프로그램을 포함해 가수들이 최근 1년간 각종 연예프로그램에 출연한 비율이 전체 출연진의 52%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음악전문채널은 특정 기획사 소속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집중 방영하고 스포츠연예지는 특정 가수의 홍보창구 구실을 자임하는가 하면, 기본기도 안 갖추어진 신인 댄스그룹들이 데뷔하면 근거 없이 노골적인 찬사를 보낸다.
만일 가요계의 PR비 실체가 우려했던 대로 만연된 상황이라면 한국 대중음악의 온갖 폐해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하고 싶다. 투명하지 않은 하드웨어에서 어떻게 투명한 콘텐츠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음반시장이 90년대 들어 급성장했지만 그 성장의 과실 안에는 댄스 장르의 가요계 독점, 아이돌 스타들의 과잉 공급, 유통시장의 전근대성, 전속계약제의 불합리성이라는 독소들이 배어 있다.
▼방송권력서 자유로워져야▼
대중음악 시장이 자기 정체성을 찾고 깊은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생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방송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리고 아이돌 스타, 댄스 장르에 대한 편집증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르에 대한 탐구, 라이브 공연의 활성화를 통한 독자적 생존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방송사 역사 마찬가지다. 가요순위 프로그램을 포함한 연예 오락프로그램 캐스팅의 전권을 소수 PD가 쥐고 있는 한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 구조에서 야기되는 ‘구조적 PR비 관행’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당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고 다양한 음악적 장르들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결국 방송을 접하는 시청자들과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이 나설 때가 아닌가 싶다.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가요계의 뼈를 깎는 자기 쇄신과 함께, 이제 시청자들과 음악팬들이 방송과 대중음악판에 제 몫을 찾아주는 운동에 동참하길 기대해 본다.
이동연 문화연대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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