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74…아리랑(13)

  • 입력 2002년 7월 16일 17시 33분


우철은 반 친구들의 목소리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려고 허리까지 몸을 쑥 내밀었다. 선생이 시킬 때마다 나는 망설인다, 일부러라도 막히거나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고. 그런데 망설이는 사이에 내 목소리가 내 목을 떠나고 만다. 바람을 타고 퍼지는 꽃가루처럼 슬픔을 머금고, 우철은 어제 갓 태어난 동생의 얼굴을 떠올리고, 동생을 잊고 있었던 자신에게 놀랐다. 그렇지, 동생이 태어났지! 내 동생이!

어서 동생을 만나고 싶다,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동생은 봄에 태어났으니까, 봄 춘 자가 붙는 이름이 좋겠지. 춘재, 춘익, 춘선, 춘호, 춘기, 해마다 봄에 생일을 맞다니, 부럽다. 봄은 모두들 뭔가를 축하하고 싶어하는 계절이다. 우철은 흘러가는 구름보다 빨리 용두산 쪽으로 날아가는 제비를 눈으로 쫓았다. 누구의 제한도 받지 않는 자신. 결국 왜놈이 없어지거나 내가 없어지거나, 둘 중의 하나겠지. 왜놈이 없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내 피로 왜의 피를 씻어내는 수밖에 없다. 화살 같은 그림자가 머리 속에 꽂혀 우철은 떨어질 것만 같았다. 우철은 동생의 이름을 생각했다. 날갯짓하듯.

춘일, 춘빈, 춘행, 춘수, 춘봉, 춘보, 춘길, 춘석, 춘범, 춘영(永) 춘태, 춘구, 춘영(榮), 춘수, 춘우, 춘홍, 춘영, 춘근, 춘운, 춘식. 봄에 심는다. 싹이 나서 쑥쑥 자라 커다란 나무가 된다. 이춘식. 좋은 이름이다. 집에 돌아가면 아버지한테 슬쩍 말해 볼까? 문이 열리는 소리에 윗몸을 틀자, 마침 정운철과 이우태가 교무실에서 옮겨온 풍금을 칠판 앞에 내려놓는 중이었다. 다음이 창가(唱歌) 시간인가, 우철은 한숨을 쉬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너는 풀이다.

수업 종이 울리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친구들은 떠드는 소리와 종소리 때문에 선생의 발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제자리에 앉아” 창가 선생이 교단에 섰다.

“차렷!”

“경례!”

학생들은 창가 교과서를 책상에 꺼내놓고, 선생은 풍금 의자에 앉았다.

“오늘은 40페이지. 히로세 중령” 선생은 풍금 페달을 누르면서 전주를 친 후 ‘히로세 중령’을 불렀다.

울려퍼지는 포성, 쏟아지는 탄환

거친 파도 일렁이는 갑판 위에

어둠을 뚫는 중령의 외침 소리

스기노는 어딨나, 스기노가 없구나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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