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요법을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2세기경 중국의 명의 화타(華陀)였다. 동양에서 ‘의술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화타는 ‘마비산’이라는 마취약을 만들어 외과수술에 썼다고 전해진다. 서양에서는 1세기경 그리스의 한 철학자가 만드라고라(mandragora)라는 식물이 진통 효과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로마시대 십자가에 못박히는 죄수들은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이 식물을 술에 타 마시기도 했다. 의사에 따라서는 환자에게 가벼운 뇌진탕을 일으키거나 질식 상태를 유도해 정신을 잃게 한 뒤 수술을 하는 방법을 썼다는 기록도 있다. 두꺼비의 독이나 양귀비, 코카인도 마취제로 쓰였다.
▷이 같은 마취술이 당시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질병이나 통증이 악령 때문에 온다는 믿음 아래 주술을 동원하는 일이 훨씬 많았다. 현대의학의 마취 기술은 1798년 영국의 험프리 데이비가 아산화질소의 마취 효과를 찾아내면서 시작된다. 1846년 미국 보스턴의 매사추세츠병원에서는 세계 최초의 마취수술이 성공을 거뒀다. 종양 환자에게 솜에 묻힌 에테르를 흡입시켜 의식을 잃게 한 뒤 제거 수술을 한 것이다.
▷마취술은 지난 1000년 동안 인간 생활을 가장 크게 변화시킨 발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인간의 수명을 늘리고 행복 지수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반면에 의료사고의 상당수가 마취와 관련돼 발생하는 등 위험성도 만만치 않다. 그야말로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다. 하지만 최근 병원마다 마취 전공 의사가 크게 부족해 수술을 앞둔 환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힘들고 별 보상이 없는 3D 전공을 기피하는 현상이 의료계에도 확산되고 있는 탓이다. 마취가 없는 현대 의학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마취과 의사가 없다면 마취술이 발명되기 이전의 고통스러운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병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밖에 다른 대책은 없는 것일까.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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