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건호/'코리아 브랜드'

  • 입력 2002년 7월 18일 17시 57분


최근 수출일선에서 일하는 세일즈맨 두 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반도체 수출상담을 위해 유럽을 다녀왔다는 한 세일즈맨은 “수출상담을 위해 한 달이 멀다 할 정도로 해외출장을 다녔지만 외국공항 면세점 점원이 코리안이냐고 묻는 것은 이번에야 처음 들어봤다”며 월드컵 개최 이후 한국의 인지도가 많이 변한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손목시계업계에서 일하는 또 다른 세일즈맨은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낮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수출품에 원산지를 밝히지 않으려 한다”며 이는 자기 회사뿐만 아니라 국내 동종업계 다른 업체도 거의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국가이미지 전담기구 설치를▼

무역업계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얘기지만 이들의 말이 새롭게 여겨지는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르면서 우리나라의 대외 인지도와 이미지가 크게 높아졌다는 생각에서다. 국가이미지의 중요성과 그 효과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수출이다.

오늘날 수출경쟁은 이미지, 브랜드, 문화의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수출경쟁이 단순히 상품의 가격과 품질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국가이미지, 기업 브랜드, 문화적 부가가치 등을 동시에 파는 속성이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13위의 경제 및 교역규모에 비해 국가 이미지가 취약하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우리만의 간판 상품과 브랜드가 미흡한 상황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수출품은 품질 면에서 대등하지만 수출가격이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10∼20%가량 낮게 책정되는 사례가 많다.

수출의 채산성이 낮고 해외경기에 따라 우리 수출이 민감하게 등락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프랑스의 문화비평가이자 경제학자인 기 소르망은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처하자 “한국이 겪는 위기는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니라 세계에 내세울 만한 한국의 문화적 이미지 상품이 없다는 데서 비롯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수출업체 세일즈맨의 지적에서 보듯이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의 대외 인지도가 높아졌고 국가이미지 역시 상당히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무역협회 해외지부에 따르면 해외 바이어들의 우리 기업에 대한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또 소비자 사이에서도 무심코 지나쳤던 ‘메이드 인 코리아’를 의식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나라 밖에서 우리 수출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 경제의 역동성과 함께 정보기술(IT) 강국, 동북아시아 허브국가로서의 면모를 널리 알렸으며 선진화된 우리의 시민의식을 크게 각인시켰다.

하지만 아직은 충분치 못하다. 수출업계가 ‘메이드 인 코리아’를 서슴없이 내세울 수 있을 만큼 국가이미지를 제고하는 포스트월드컵 대책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정부가 ‘국가 이미지 제고위원회’를 발족시켜 본격적인 한국 알리기에 나설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다만 정부의 이러한 노력이 일과성에 그치지 않고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민관합동의 상설전담기관을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과 재정투자가 필요하지만 민간기업의 자발적인 노력이 어우러지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도쿄올림픽을 통해 이미지를 높였지만 세계시장에서 메이드 인 저팬 프리미엄을 끌어낸 것은 소니와 도요타 등으로 대변되는 일본기업이었고 선진시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행동해 온 일본인이었다.

▼일류제품만들기 노력해야▼

국가 이미지 개선은 인지(awareness)와 친숙(familarity)의 두 단계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월드컵을 계기로 해외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으므로 이제는 상설기관을 조기에 설치해 이미지 친숙화 작업을 위한 체계적인 활동을 추진한다면 엄청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 국가화’를 국가발전 전략의 하나로 삼는다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 개방된 허브국가로서의 이미지를 적극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국가 이미지는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와 맞물려야 상승효과를 내므로 주로 해외 바이어의 브랜드에 의존해온 우리 업계의 수출방식도 고쳐야 할 점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메이드 인 코리아’ 이미지는 월드컵과 같은 후광만으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제품, 차별화된 제품으로 신뢰와 명성을 쌓아 가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건호 무역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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