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뿐이 아니었다. 친인척들은 정치에서도 철저히 배제됐다. 지친이든, 외척이든, 부마든 각기 품계와 녹은 주었을망정입조(入朝)의 길은 아예 봉쇄했으니 친인척의 정치 개입이 망국적 풍토라는 인식은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랬는데도 조선조 중기 이후부터는 친인척의 발호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고종 즉위 후 대원군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외척의 세도가 다시 기승을 부려 혼란을 초래했다. 최고 권력자 친인척의 부패로 국정이 어지러웠던 역사의 기록은 이 밖에도 많다.
▷우리 역대 대통령 가운데 친인척 비리의 멍에에서 자유로운 이가 있을까.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은 형 동생 사촌형제 등이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은 딸의 외화 밀반출 혐의로 구설수에 올랐고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 재임시절 차남 현철(賢哲)씨가 구속됐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취임 전인 1998년 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친인척을 엄중히 관리하겠다. 내게 맡겨달라….” 그러나 벌써 두 아들과 처조카가 구속됐다. “국민은 걱정 말라”고 큰소리쳤던 대통령이 바로 그 문제로 국민 앞에 몇 번씩 사과를 해야 했으니 기막힌 일이다.
▷종친부(宗親府)는 조선시대 왕실 일가친척의 일을 맡아보던 기관이다. 경복궁 건춘문 바로 앞에 있었던 종친부는 왕자들을 감독하고 왕실의 과실을 찾아내 규탄하는 일을 맡았다. 지금 정부가 대통령 친인척 비리 척결방안 마련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 하나로 이를 전담할 비리조사처 신설을 검토중이라니 95년 전 사라진 종친부가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그러나 어디 수사기관이 없어서 그동안 친인척들이 마음대로 비리를 저질렀던가. 정작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의지’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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