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화제 도서/파리에서]´유클리드의 지휘봉´

  • 입력 2002년 7월 19일 17시 37분


◇유클리드의 지휘봉/장-피에르 뤼미네 지음/장-클로드라테스출판사 2002년 6월

7월 1일부터 프랑스 학생들의 여름 바캉스가 시작됐다. 연간 117일의 방학 중 66일이 여름에 집중돼 있어 프랑스에서는 특히 여름 바캉스를 ‘그랑드 바캉스(grandes vacances)’라 부른다. 일반인들도 연 6주의 법정휴가를 대부분 이 기간에 맞춰 신청하므로, 7, 8월의 프랑스는 본격적인 ‘하면기(夏眠期)’에 들어가게 된다. 달력에서 한 해가 바뀌는 것은 1월 1일이지만, 프랑스인들에게 한 해의 일이 마무리되고 새 일이 시작되는 것은 오히려 이 ‘그랑드 바캉스’를 전후로 이루어진다.

‘그랑드 바캉스’는 프랑스 출판계에도 매우 중요한 기간이다. 우선 이 기간은 본격적인 가을 독서철을 위한 ‘준비 기간’이다. 여름 휴가 전부터 시작된 출판사들의 물밑작업이 늦어도 가을 ‘랑트레’(‘개학’을 뜻하는 이 프랑스어는 원래 ‘귀환’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 ‘긴 여름 휴가에서 돌아와 각자의 일터로 복귀한다’는 광의(廣義)로 사용될 수 있다)가 시작되기 전에 마무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가을 ‘랑트레’에 맞춰(좀더 넓게는 8월말부터 11월초까지), 프랑스 출판사들이 쏟아낼 새 책의 수가 무려 1235권(픽션 663권, 논픽션 572권)에 달한다고 한다. 흥미로운 현상은 ‘그랑드 바캉스’가 시작돼도 도서판매량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바캉스를 떠나는 많은 프랑스인들이 휴가지에서 읽을 책, 한두 권을 구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출판사들 입장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바캉스 도서시장’을 놓고, 판촉활동을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다. 신문, 잡지 등에서 경쟁적으로 휴가철에 읽기 적당한 책들을 추천하는 모습이 프랑스에서는 별로 낯설거나 어색치 않은 풍경이다.

필자가 장-피에르 뤼미네의 소설 ‘유클리드의 지휘봉(2002년 6월, 장-클로드 라테스 출판사)’을 우연히 만난 것도 어느 잡지의 휴가철 권장 도서목록에서였다. ‘고대 지성사 입문을 위한 교양역사 소설’ 정도로 분류할 수 있는 이 소설 속에는 독자들의 흥미를 자아내는 요소들이 도처에 가득하다. 우선 천체물리학자인 작가의 경력도 이채롭고,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라는 소설의 무대도 신비롭다. 또한 불확실한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를 포에지와 서스펜스로 포장, 흥미진진한 ‘천일야화’를 엮어낸 작가의 솜씨도 결코 예사롭지 않다. 이야기는 인류 역사에서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파괴’를 둘러싸고 벌어진다. 이슬람제국의 2대 칼리프 ‘오마르(우마르 1세 AD 586-644)’의 명을 받아 도서관을 파괴해야 할 운명에 처한 이슬람 장군 ‘아므루’, 그를 설득하여 고대문명의 보고를 지키려고 애쓰는 세 인물, 늙은 신학자 ‘필로퐁’, 미모와 지성을 갖춘 여성 천문학자 ‘이파티’, 젊은 유태인 의사 ‘필라레토스’를 통해, 작가는 해박한 지식과 명료한 필체로 고대 도서관 속에 배어있는 지성인들의 삶과 학문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비견되기도 하고,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에 못지 않다는 평을 듣기도 하는 뤼미네의 소설이, 이번 여름 바캉스를 떠나는 적지 않은 프랑스인들의 여행보따리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휴가지까지 따라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임준서 프랑스 LADL 자연어처리연구소 연구원 joonseo@worldonlin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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