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세계화의 철학적 담론´

  • 입력 2002년 7월 19일 17시 46분


◇세계화의 철학적 담론/임홍빈 지음/324쪽 1만8000원 문예출판사

철학을 공부하는 이가 바로 눈앞에서 진행 중인 어떤 사태를 다룬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안심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안한 일이기도 하다. 특히 그것이 ‘세계화’처럼 특정 측면이나 쟁점에 국한시킬 수 없는 거대한 시대 담론일 경우 안심과 불안은 더욱 첨예하게 갈라진다. 주제의 현안성을 예민하게 느끼는 독자일수록 그 긴장은 견디기 힘들다.

내가 세계화에 대해 쓰더라도 틀림없이 저자와 같은 틀을 잡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 역시 세계화의 핵심인 ‘경제의 세계화’가 가능하게 된 조건들 자체가 “시장에서부터 유래했거나 시장의 주요 행위자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구축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세계화는 시장의 수준을 넘는 ‘중층적 과정’이다. 대개는 복잡해지기 마련인 이런 중층적 과정이라는 것을 포착하려면 ‘일종의 지형도’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바로 이 점에서 나는 철학하는 임홍빈 교수(고려대 철학과)가 세계화의 문제를 다뤘다는 것에 크게 안심한다. 9개의 장으로 이뤄진 이 책은 그 동안 주로 사회과학 전공자들이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에서 장님 코끼리 만지듯 다뤘던 쟁점들을 거의 모두 망라한다. 딜레마에 빠진 주권국가 체제의 정체성, 시장만능주의가 판치는 가운데 제기되는 시장주의의 실패, 더 이상 사회의 한 부분으로 간주할 수 없는 문화 담론과 경제 위기의 상관관계, 노동사회와 지식기반사회의 착잡한 교착, 인간 관계를 세계적 차원에서 매개하는 기술의 중심적 위상과 기술의존적인 삶의 취약성, 무엇보다 보편주의적 인권 이념과 특수주의적 문화 다원주의의 갈등과 소통 등등. 세계화를 생각할 때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슈들이 전체적으로 하나의 편제를 이루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런 세계의 모습을 갖고 정작 저자나 내가 공통되게 터잡은 철학의 안마당으로 들어오면 사태는 불안해진다. 실제로 이 책은 각 쟁점을 그저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각 쟁점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던지는 대안적 발상을 던지고 있다. 비록 외국의 연구 경험에 많이 의존하지만, 교환적 정의에 입각한 윤리적 경제라든가, 자유를 회복하는 생태주의적 노동철학, 인간을 성숙한 지적 주체로 거듭나게 하는 지식사회의 호조건, 특히 주권국가를 구성주체로 하는 세계공화국의 이념 등이 쟁점마다 단편적으로 제기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철학적’이 아니다. 다시 말해, 세계에 대한 이런 포괄적 파악과 단편적 대안이 ‘사태의 전체를 거시적으로 조망’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인간 실존과 연관시켜 그 심층을 투시’하도록 하기에는 아직 사고가 예열(豫熱)되지 않은 느낌이다.

나는 ‘국가의 관점’으로부터 세계화의 문제를 분석하는 저자의 출발점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관점이 ‘철학적’ 담론 안에까지 들어오는 것은 말리고 싶다. 오히려 국가를 자기 세대에서 항상 새로 만들어야 할 것으로 인식하는 ‘시민’의 정치철학이 저자의 철학적 목적의식에 좀더 부합하지 않을까.

홍윤기 (동국대 교수·철학) hyg5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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