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압력' 에 휘둘린 정부가 더 문제다

  • 입력 2002년 7월 19일 18시 50분


다국적 제약사들이 약값 인하정책을 막기 위해 미국 행정부까지 동원해 우리 쪽에 전방위로 압력을 행사해 왔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을 관철하기 위해 로비를 하는 것까지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로비 차원을 넘어 협박에 가까운 압력까지 가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국가 주권과도 관계있는 심각한 일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국민을 분노케 하는 것은 이에 휘둘린 우리 정부다. 약값 인하는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화와 직결되는 문제로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압력’ 때문에 비싼 약값을 내리지 않고 국민에게 그 부담을 돌렸다면 그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5월 건보 재정적자 절감대책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려고 했으나 청와대 비서실이 가로막았다”는 이태복(李泰馥) 전 보건복지부장관 측근 인사의 폭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대책의 핵심이 바로 약값 인하였기 때문이다. 이 전 장관은 앞서 3월에도 대통령에게 약값 인하의 필요성을 설명하려 했으나 비서실의 제지로 무산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이 작년 5월부터 관련기관을 총동원해 우리 정부를 집요하게 압박했고 특히 올 5월은 약값 재평가제도 추진과 관련해 압력이 정점에 달한 때였기에 청와대가 복지부의 약값 인하정책에 부정적이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청와대 측은 “섣불리 대통령이나 국민에게 약속하지 말라는 취지였다”고 하지만 건보 재정적자가 ‘발등의 불’이었음을 감안하면 당연히 보고가 이루어졌어야 한다. “대통령 일정이 맞지 않아 보고가 성사되지 않았다”는 해명 또한 구차하게만 들린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약값 인하정책에 대해 어떤 압력이 있었는지, 또한 이 전 장관을 취임 6개월 만에 전격 경질한 배경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이와 함께 참조가격제, 약값 재평가 등 약값을 적정선으로 내리기 위한 정책도 다시 추진되어야 한다. 국민의 건강권은 어떤 압력에도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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