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창호 연파 이세돌 3단 “꿈은 이루어진다”

  • 입력 2002년 7월 20일 00시 32분


“이젠 한번 이길 때도 되지 않았나요.”

이세돌 3단이 6일 열린 후지쓰배 준결승에서 이창호 9단의 대마를 잡고 승리를 거둔 뒤 밝힌 소감이었다.

한번만으론 만족할 수 없었을까. 12일 열린 왕위전 도전 1국에서 이 9단의 대마를 또 한번 포획하며 쾌승을 거뒀다. 이 9단은 대마를 잡힌 것이 믿기지 않는 듯 평소 그답지 않게 이리저리 몸부림쳐봤지만 이 3단의 날카로운 발톱은 대마의 목줄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 9단의 반격 역시 만만치 않았다. 19일 열린 왕위전 도전 2국에선 이 9단이 저돌적인 이 3단의 대시를 침착하게 막아내며 159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두 천재기사의 대결을 본 바둑계에선 드디어 ‘이창호-이세돌’ 양강(兩强)시대가 열린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2000년 32연승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정상급으로 도약한 이 3단이 이젠 드디어 이 9단과 어깨를 나란히 할 최정상급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이다.

만약 ‘이-이’ 시대가 열린다면 국내 바둑계는 80년대 조훈현 9단의 독주와 90년대 초반 조훈현-이창호의 각축, 90년대 중반이후 이 9단의 독주 시대에 이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이 3단은 지난해초 LG배 세계기왕전 결승 5번기에서 2연승 후 3연패를 당한 뒤 이 9단에게 ‘기가 죽은’ 모습을 보였다. 물론 이 9단의 높은 벽을 단 한번의 도전만에 뛰어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 3단에겐 너무나도 충격적인 패배였던 것. 이후 이 3단은 이 9단을 상대로 1승4패에 그쳤다.

그러나 이 3단은 후지쓰배 이후 이 9단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주변 기사들의 평가다. 후지쓰배에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나올’ 이 9단의 스타일로 국면이 흘러갔으나 바늘 끝 만한 틈을 비집고 들어가 승리를 거뒀고 왕위전에선 중앙 힘싸움에서 KO펀치를 작렬시켰다.

이미 이 3단은 조훈현 유창혁 9단의 관문을 통과한 상태. 이 3단은 조 9단에게 7연승을 거뒀고 유 9단과는 두 번의 타이틀매치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3단이 왕위전을 손에 넣고 후지쓰배까지 우승한다면 ‘이-이 시대’ 개막은 공인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3단이 이번에도 이 9단의 벽을 넘지 못한다면 이 9단의 독주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다만 이 3단의 아킬레스건은 ‘이틀에 한번’꼴의 살인적 대국 일정 때문에 피로도가 심하다는 것. 이 3단의 형인 이상훈 3단은 “옆에서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과연 표범같은 이 3단의 발톱이 이 9단의 용안에 흠집을 낼지, 아니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이 9단이 후배들의 도전을 지그시 눌러줄지 주목된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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