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자연앞엔 ‘황제’도 인간…우즈 10오버파

  • 입력 2002년 7월 21일 18시 14분


“차라리 집에서 쉬고 싶다.” 굵은 빗줄기와 강한 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타이거 우즈가 3라운드 1번홀 러프에서 힘겹게 공을 빼내고 있다. 우즈는 첫 홀을 보기로 불안하게 출발하며 기분이 상했다. /뮤어필드AP연합
“차라리 집에서 쉬고 싶다.” 굵은 빗줄기와 강한 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타이거 우즈가 3라운드 1번홀 러프에서 힘겹게 공을 빼내고 있다. 우즈는 첫 홀을 보기로 불안하게 출발하며 기분이 상했다. /뮤어필드AP연합
신천지를 향해 떠난 황제는 여정이 다 끝나기도 전에 지쳐버려 더 이상 발걸음조차 뗄 수 없는 듯 보였다. 하늘이 내린 혹독한 시련 앞에 ‘신의 모습을 빌려 태어났다’는 그 역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누구도 밟아본 적이 없는 진정한 그랜드슬램의 부푼 꿈은 세찬 비바람과 함께 악몽으로 바뀌고 말았다.

21일 영국 스코틀랜드의 뮤어필드GL(파71)에서 열린 제131회 브리티시오픈골프대회(총상금 580만달러) 3라운드.

올 마스터스와 US오픈 챔피언인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27·미국)는 악천후 속에서 최악의 성적으로 무너졌다. 사상 처음으로 한해 4대 메이저 타이틀을 모두 따내려던 그의 야심은 사실상 좌절됐다.

버디는 단 1개에 그쳤고 보기 7개와 더블보기 2개의 민망한 기록으로 잘 치는 주말 골퍼 수준에 불과한 10오버파 81타. 전날 공동 9위까지 떠올랐으나 중간합계 6오버파 219타로 컷오프 통과선수 81명 가운데 공동 67위로 곤두박질쳤다. 5언더파의 단독선두 어니 엘스(남아공)에 11타나 뒤져 있어 천하의 우즈라 하더라도 역전은 힘겨운 상황.

우즈의 이날 타수는 프로에 데뷔한 1996년 이후 최악이었다. 종전은 역시 강한 바람과 싸웠던 1996년 호주오픈 1라운드에서 남겼던 79타.

우즈의 비운은 우연하게도 자신의 우상인 잭 니클로스의 발자취를 떠올리게 했다. 1972년 마스터스와 US오픈을 잇달아 제패한 니클로스도 브리티시오픈에서 무릎을 꿇어 그랜드슬램 달성의 기회를 날렸다.

우즈가 비운의 주인공으로 전락한 데는 악명 높은 스코틀랜드의 날씨가 몰아친 오후에 티오프하면서 힘없이 쓰러졌기 때문. 굵은 빗방울이 얼굴을 때렸고 최고 시속 50㎞에 가까운 강풍과 섭씨 5도에 불과한 싸늘한 기온에 그의 천재성은 자취를 감췄다.

방수 비옷에 목까지 덮는 티셔츠로 무장했으나 그리 큰 도움을 받지 못했고 18홀을 도는 동안 젖은 장갑을 12차례나 바꿔야 했다. 전반 9홀 동안 그의 티샷은 단 1차례만 페어웨이에 떨어졌을 뿐 번번이 허리춤까지 오는 깊은 러프를 헤매야 했으며 쉬운 퍼팅을 여러 차례 놓쳤다.

악천후 속에서 샷이 마음대로 구사되지 않으면서 심리적으로 흔들렸고 집중력도 떨어져 더욱 난조를 보이는 악순환에 빠졌다. 17번홀에서 간신히 이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버디를 낚은 뒤에는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 양팔을 번쩍 들며 활짝 웃었다.

“정말 힘들고 실망스러운 라운드였다. 하지만 나는 완패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막판에 버디 하나를 잡지 않았는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

그랜드슬램을 향한 우즈의 야망은 이제 다시 한해 뒤로 미뤄져야 한다. 그래도 그는 결코 실망하지 않는 눈치다. 도전 자체를 즐기겠다는 듯하다.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우즈의 프로 데뷔 후 최악 라운드 순위
순위스코어연도대회라운드
(1)812002브리티시오픈3
(2)791996호주오픈1
(3)781999페블비치 내셔널프로암3
781996투어챔피언십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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