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시즌을 마치고 은퇴후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인 첫 메이저리그 코치가 된 이만수가 일반 팬과 만남의 자리를 갖기는 4년6개월여만에 처음. 하지만 팬은 아직도 그를 잊지 않고 있었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며 마냥 즐거워했다.
중년의 나이에도 여전히 무쇠 체력을 자랑한 이만수는 번외로 참가한 홈런 레이스에서 웬만한 현역 선수를 능가하는 2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팬을 열광시켰다. 특유의 입심과 함께 홈런을 칠 때마다 모자를 벗어 그라운드의 환호에 답례하는 무대 매너까지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올스타전 다음날 그와 만났다. 4박5일간의 짧지만 보람찬 휴가를 끝내고 출국한 이만수가 털어놓은 근황을 소개한다.
-프로야구 20년 올스타에 선정된 것을 축하한다. 모처럼 귀국한 소감은….
“올스타전 행사때 경기전 팬을 대상으로 한 퀴즈를 지켜보다가 깜짝 놀랐다. 프로야구 1호 홈런의 주인공을 묻는 질문에 한 10대 팬이 너무나 쉽게 이만수라고 대답했다. 내가 홈런을 친 것은 그가 태어나기도 전이었을 것이다. 가슴이 뭉클했다. 다른 말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시즌이 한창 진행중인데 어떻게 귀국할 수 있었나.
“한국야구위원회에서 구단에 팩스로 공문을 보냈다. 감독이 보자고 했다. 이런 게 왔는데 어떻게 하겠냐고 해서 단장에게 물어보겠다고 하니까 감독이 무슨 소리냐, 결정권은 내가 갖고 있다며 팀의 큰 자랑거리인데 무조건 가야 한다고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진 뒤 우리 팀 코치와 담당 기자들까지 와서 모두 축하해 줬다.”
-처음 미국으로 건너가 고생이 많았을 텐데….
“나는 어려웠던 기억은 빨리 잊는 편이다.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초창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산하 싱글A에서 연수를 받을 때였다. 투수의 공을 받아보라고 했는데 한마디로 죽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 빠르기만 따지면 마이너리그가 메이저리그보다 빠르다. 은퇴후 6개월간, 은퇴전 지명타자로 3년동안 공을 받아보지 않았던 나로선 이들이 던지는 들쭉날쭉한 160㎞짜리 공에 손이 퉁퉁 부을 정도였다.”
-동료 코치와 선수들은 이코치가 한국에서 그렇게 유명한 선수였다는 것은 알고 있나.
“99년 막 화이트삭스의 트리플A팀으로 옮겼을 때다. 한번 타격 시범을 보여달라는 주문이 들어와서 날짜를 잡고 맹훈련했다. 첫날은 맞바람이 불어 10개중 6개를 넘겼고 그 다음날은 7개를 넘겼다. 당시 샌디 알로마가 부상을 당해 우리 팀에 내려와 있었는데 깜짝 놀랬다. 그때부터 팀내 스타가 됐다.”
-영어는 어느 정도 배웠나.
“경상도 사람이라 그런지 아직도 영어는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야구장에서 대화는 크게 문제가 없다. 워낙 적극적인 성격이라 의사소통을 위해서라면 ‘브로컨 잉글리시’도 서슴지 않는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낸다. 그렇지만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화는 여전히 힘들다.”
-많은 팬이 이코치의 국내 복귀를 기다리고 있다. 동기생인 기아 김성한 감독이 올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하루 빨리 1세대 스타들이 지도자로 나서 침체된 프로야구의 붐 조성에 기여해야 할텐데….
“처음 갈 때는 길어야 3년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의 선진야구에 눈이 점점 뜨이기 시작하니까 선수지도 뿐만 아니라 트레이닝과 스카우트 기법 등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아 보인다. 내가 삼성의 스타였으니까 복귀하면 무조건 삼성으로 갈 것이란 선입견도 장애물이다.”
-돌아오지 않겠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솔직히 한국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언제라도 조건이 맞는 팀만 있으면 OK다. 그동안 자녀 교육과 취업비자의 2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모두 해결됐다. 2년전 삼성 김응룡 감독께서 요청을 했을 때는 큰 아들 하종이 고등학교 2학년때였다.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올 9월에 하종이 인디애나 웨슬린칼리지에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비자가 11월에 끝나는 관계로 해마다 시즌이 진행중인 9월에 재계약을 해 왔지만 올해부터는 미국내 다른 구단에서도 오퍼가 있는 만큼 모든 걸 오픈한 상태에서 기다릴 것이다.”
-끝으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선수들은 프로에 입단만 하면 그걸로 모든 게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그렇지 않다. 메이저리그의 화려함 뒤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수들이 마이너리그에서 제대로 대우도 받지 못한 채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들의 훈련량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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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꼭 산책…요즘도 개인훈련▼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1970년대 리처드 바크의 베스트셀러 소설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주인공 갈매기 조너선리빙스턴 시걸이 바로 이만수라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이만수의 하루는 남들보다 먼저 시작한다는데서 차별성이 있다. 홈에서 야간경기가 있는 날이면 경기후 미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느새 다음날 오전 2시 가까이 된다.
대개 프로야구 선수단은 늦잠을 자는 게 상례지만 이만수는 오전 7시면 어김없이 기상한다. 두 아들을 깨워 학교에 바래다 주고 돌아와 9시에 아침 식사를 한다. 이때부터가 그에겐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식사후 도보로 7분 거리인 미시간 호수로 부인 이신화씨와 함께 산책을 나가 둘만의 대화를 나눈다.
낮 12시면 일찌감치 야구장으로 출발한다. 그라운드는 당연히 텅 비어 있다. 선수들의 훈련에 필요한 도구를 챙기고 일지를 적은 다음 개인훈련을 시작한다. 이만수가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에서 아직도 괴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5년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은 개인훈련 덕분이다.
오후 2시가 되면 선수들이 하나둘 도착해 인사를 건넨다. 이제 코치 이만수로 돌아갈 시간이다. 불펜에서 정신없이 선수들의 공을 받아주고 나면 어느새 경기시간이 된다.
원정경기때면 이만수는 모처럼 편한 시간을 갖는다. 자신의 홈페이지(www.leemansoo.co.kr)에 그 많은 글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이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헐크’이만수는?▼
▽출생〓1958년 9월9일
▽출신교〓대구중-대구상고-한양대
▽취미〓골프 수영 테니스 등 운동이면 모두 OK
▽가족〓부인 이신화씨와 2남
▽종교〓기독교
▽경력〓1977∼78년 청소년 국가대표,
78∼81년 국가대표,
82∼97년 삼성 라이온스,
98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싱글A 지도자 연수,
99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트리플A 객원코치,
2000년∼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