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민주당보다 훨씬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 반면에 민주당은 스스로 ‘집권 야당’이라고 부를 정도로 국정에 참여하지도 못하면서, 패배주의에 빠져 개헌론에 후보교체론까지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대 초반의 이 기업인은 왜 한나라당에 더 인색한 점수를 주었을까.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은 모두 국민참여경선제와 집단지도체제를 수용하는 등 정당개혁을 시도했지만 양당의 속 알맹이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당선 직후 ‘대통령이 지명하지 않은 최초의 국회의장’이라는 의미를 부여했지만 제일 먼저 자신의 소속당이었던 한나라당 당사를 찾아가 대통령후보에게 인사를 했다. 이는 정당의 제도는 바뀌었지만 관행은 예전 그대로임을 보여준다.
▼그들이 민주당 개혁 막아▼
독재체제는 과도기적 민주체제보다는 훨씬 효율적이다. 당 대표와 대통령후보가 다른 목소리를 내고 그래서 재·보선 공천과정이 시끄럽기만 한 민주당에 비해 한나라당의 운영은 매끄럽다. 하지만 현 정부의 실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숙고해 본다면, 그 일사불란함이 또 다른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현 정부 실정의 원인은 바로 민주당이 DJ당이었다는 데에 있다. 정당원이 총재에게 충성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권력형 비리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겠는가.
아직도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민주당에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이유는 민주당이 4·19혁명과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왕적 총재가 없는 정당이니 그래도 채찍질을 하면 개선될 희망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노무현당을 만든다, 이번 재·보선에 한해 후보를 낙점한다, 대통령과 차별화를 한다는 등 위기타개책을 엉뚱한 곳에서만 찾고 있다.
선거 때만 되면 대통령은 탈당을 하고 정당은 이름을 바꾸지만, 유권자는 그런 잔꾀에 속아넘어가지 않는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 대통령이 탈당하고 당명도 바꾸었지만 유권자는 대선과 곧 이은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심판했다. 비록 김대중 대통령이 탈당을 했지만 유권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을 가혹하게 심판했다. 일부에서는 우리는 인물 중심의 투표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투표 결정에서 정당요인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유권자는 한나라당은 구여권을 계승하고 민주당은 구야권을 계승하는 정당으로 정당의 정체성까지 파악하고 있다. 결국 민주당은 현 정부의 공과를 에누리 없이 짊어지고 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선거는 미래에 대한 투자다. 정당이 미래지향적으로 변화해 나간다면 과거의 허물은 어느 정도 용서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 새로운 정치에 걸맞은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대통령 한 사람의 도덕성에 기대는 정당보다는 훨씬 더 큰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민주당이 휘청거리는 이유는 DJ당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면서 과거 DJ가 담당했던 구심점은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후보 중심의 일사불란한 체제를 이루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다. 하루빨리 아래로부터의 정당민주화를 이루어내야 과도기적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공천권, 당원에게 돌려줘야▼
정당 개혁의 핵심은 정당에 기생하는 정치 룸펜을 정당에 헌신하는 자발적 정당원으로 물갈이하는 것이다. 물갈이가 불가능하면 새 물을 부어 희석이라도 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구당위원장이 모두 사퇴하고 공천권과 의사결정권을 당비를 내는 진성 당원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지구당위원장과 대의원은 명실공히 당원에 의해 선출되어야 하며 지구당 위원장은 지구당원의 의사를 취합해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되 다음 선거에서는 선출직에 출마하는 것이 금지되어야 한다.
‘붉은 악마’의 열기가 K리그까지 이어진 것처럼 민주당은 국민참여경선에서 확인된 시민의 참여의식을 정당지지로 전환시켜야 한다. 민주당이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국민은 이번 대선에서 결과가 뻔한 경기를 관전하게 될 것이다. 양당이 대등하게 멋진 한 판 승부를 펼친다면 국민의 축구사랑이 정치로 이어지지 못할 이유가 없다.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정치는 현실정치를 뛰어넘는 상상력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잊지 말자.
조기숙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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