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월정사석탑 12세기에 세워졌다”

  • 입력 2002년 7월 24일 18시 45분


국보 48호인 월정사 8각9층 석탑[동아일보자료사진]
국보 48호인 월정사 8각9층 석탑
[동아일보자료사진]
“국보 48호 월정사 8각9층 석탑은 10세기 탑이 아니라 12세기 탑이다.”

그동안 서기 10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됐던 강원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 8각9층 석탑이 이보다 200여년 늦은 12세기 이후에 세워졌다는 학설이 제기됐다.

석탑 주변을 발굴하고 있는 조계종 문화유산발굴단은 24일 현장을 공개하고 “탑 아래에서 발견된 12세기 중국 동전 등으로 미루어 탑은 12세기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발굴단에는 김동현 동국대(한국건축사) 정영호 한국교원대(한국미술사) 문명대 동국대(불교미술사) 교수 등이 지도 위원으로 참가했다.

이번 성과에 따라 기존에 인정받아왔던 월정사 석탑 10세기 조성설의 수정이 불가피해지고 정확한 조성 연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대표적인 다각다층탑으로, 조형미가 빼어난 월정사탑은 제작 양식 등으로 보아 고려초인 10세기경에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돼왔다.

월정사탑 아래 부분에서 발굴된 중국 송나라 시대의 숭녕중보

발굴단이 공개한 12세기 동전은 송나라 휘종 때인 1102년부터 1106년 사이에 주조해 사용했던 숭녕중보(崇寧重寶) 1점. 발굴단은 “이 동전이 탑의 옛 지표면보다 아래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탑이 12세기 이후에 조성됐음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고고학계에선 땅 속에서 A보다 B가 아래에 있으면 B가 A보다 오래된 것으로 판단한다. 물론 지층의 위치가 달라졌을 경우는 예외이나 이번 월정사탑 발굴 결과 층위 교란이 없어 탑이 동전보다 후대일 것이라는 게 발굴단의 판단이다.

발굴 지도위원들은 “12세기 전반에 청자와 기와 조각 등으로 터를 다지고 일부 건물을 지었으며 12세기 중반 경에 탑을 세우고 나서 조선 중기 이후에 다시 탑 주변에 흙을 다진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번 발굴에선 조선 세종의 형인 양녕과 효령대군의 이름이 새겨진 기와도 출토됐다. 세조 때 월정사를 중창했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됐지만 세종 때 양녕과 효령대군이 월정사 중창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처음 제기된 것이다. 발굴단은 또 탑의 기단석 아래 지반이 매우 취약해 탑의 안전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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