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결과의 일부를 2년 동안이나 비밀에 부쳤다가 최근 불거진 중국과의 마늘협상 파동을 지켜보면서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를 마친 후 스스로 억울한 심정을 금치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 70대 고령에 대통령직을 수행했던 레이건씨와 비교하면 김 대통령은 정말 국정에 심혈을 기울인 셈이다. 그를 보좌했던 한 전직 경제부처 장관은 김 대통령이 경제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국정을 일일이 직접 챙긴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국정운영의 난맥상을 보면 김 대통령이 경제에 무지했든, 아니 무지했기에 경제정책을 전문가들에게 의존해야 했든 퇴임 후 높은 평가를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고위직 몇 사람이 정책결정▼
레이건 전 대통령이 위대한 업적을 이룬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은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이유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 미국의 잘 짜여진 국정운영시스템을 최대한 이용했다는 점이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국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었다고 믿는 미국인은 거의 없어 보인다. 대통령을 연구하는 한 미국인 교수에 따르면 임기 후반에 이르러 그는 부통령인 부시를 ‘바시’로 부르는 등 이미 치매증세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그가 8년의 임기를 무사히 마치는 정도가 아니라 오늘날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업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잘 짜여진 국정운영시스템 덕분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마늘협상 파동은 일차적으로는 현 정부 출범 시 부처간 관료정치에 의해 급조된 통상행정체계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좀더 궁극적으로는 대통령비서실을 포함한 우리나라 전체 국정운영시스템이 지닌 한계에서 오는 문제다. 중국 마늘의 수입 자유화조치는 관련 부처의 실무자 수준에서부터 충분한 사전 조정을 거치면서 상향식으로 이뤄졌어야 한다. 그랬더라면 고위직 몇 사람이, 그것도 일부의 주장대로라면 반대하는 부처의 인사들은 제외한 채 정책을 결정하고 그 내용을 비밀에 부쳤다가 나중에 들통이 나니까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책을 상향식 협의 과정을 거쳐 수립하면 사안이 공개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해당사자들의 반대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하소연도 물론 있을 법하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 시절도 아니고 반대할 소지가 있는 사람들을 따돌리고 수립된 정책이 제대로 집행되기를 바란다면 큰 오산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정책이 그렇거니와 중국과의 마늘 협상도 충분한 협의를 거치면서 이해가 엇갈리는 사회집단들 간의 윈-윈게임이 이뤄지도록 유도했어야 했다. 만일 마늘 수입자유화가 국익에 더 바람직한 것이라면 그로 인해 당장 피해를 보게 될 농가에 대해서는 업종 전환을 포함한 다른 대책을 통해 보상하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이 점을 국민에게 솔직히 밝히고 납득하도록 설득했어야 했다.
둘째, 비록 해박한 지식을 갖고 국정을 일일이 챙기지는 않았다지만 레이건 전 대통령은 그가 유권자들에게 약속한 신자유주의 이념이 국정 전반에 걸쳐 일관성 있게 반영되도록 그의 참모들을 독려한 점에서 위대하다. 이에 비하면 김 대통령이 약속한, 그리고 취임 이후 일관되게 지향해 온 국정이념이 과연 무엇인지 국민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처럼 세세하게 국정을 손수 챙겨온 대통령이 마늘협상에 대해 몰랐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거니와 세간의 의혹처럼 그가 처음부터 협상 내용을 주지하고 있었다면 그 협상 내용이 그의 정책이념에 어떻게 부합하는 것인지 국민은 납득할 수 없다.
▼국회서 마늘협상 조사를▼
이번에 불거진 마늘협상 과정은 철저하게 그 경위를 밝혀야 한다. 그것을 통해 영역별로 나눠 정책을 관장하는 이른바 ‘내부 내각’인 대통령비서실 문제를 포함해 국정운영시스템 전반에 관한 문제점을 확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정당들도 국회에서 그 경위가 밝혀지도록 협조해야 한다. 이번 사태의 교훈을 통해 각 당의 대선후보들은 국정운영체계에 대한 소신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공약에 포함시키기 바란다. 아울러 그가 대통령으로서 일관되게 지향하려는 정책이념이 무엇인지도 함께 밝혀야 한다. 그것이 그를 위대한 대통령으로 남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정용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행정학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