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Paper Company’ 자금조달 ‘만능선수’로 각광

  • 입력 2002년 7월 25일 17시 25분


근대경제학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는 1776년 ‘국부론’에서 “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의 인도를 받아서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목표를 달성한다”고 갈파했다.

이제 경제에는 시장에 이어 또 하나의‘보이지않는손’이등장했다. 바로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서류상의 회사)’다.

페이퍼 컴퍼니는 외형적 실체는 없지만 막대한 자산을 보유하며 금융회사와 기업의 자금조달 및 구조조정, 대형건설사업 추진 등을 주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외환위기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해 빠른 속도로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절세(節稅)에서 최고의 자금조달 수단으로〓전세계에서 페이퍼 컴퍼니가 가장 많이 설립된 곳은 케이맨 군도를 비롯한 버뮤다 지역. 수많은 금융회사와 기업들이 이곳에 서류상으로만 역외(域外)펀드를 설립한다. 기업활동에 거의 제한이 없고 세금이 없기 때문에 역외펀드를 설립해 해외자금을 유치하거나 탈세에 가까운 절세 수단으로 활용한다.

한국에서도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페이퍼 컴퍼니를 주로 이러한 용도로 사용했다. 1995년 산업은행이 미국 내 조세감면지역(Tax-haven)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미국의 기관투자가로부터 2억8700만달러를 조달, 항공기 2대를 매입한 뒤 대한항공에 임대해준 것이 한 예다.

비자금 조성과 외화밀반출 등에 악용된 적도 많았다.

대우그룹이 영국 런던에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를 활용해 4430만달러를 세탁해 장부외 자금을 조성한 뒤 이 돈으로 페이퍼 컴퍼니인 홍콩 KMC와 미국 라베스(Laves) 명의로 외자유치를 가장해 국내 우량계열사를 인수했다가 적발된 적이 있다.

99∼2000년 코스닥시장이 활황세를 보일 때는 국내 작전세력이 말레이시아 지역에 만든 역외펀드로 자금을 보냈다가 다시 들여온 뒤 외자유치라고 치장해 주가를 조작하는 수법도 흔했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용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금융감독원 현정근 자산유동화 팀장은 “초기에는 은행이 갖고 있는 막대한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위한 자산유동화증권(ABS)발행이 주를 이뤘다”고 말했다.

부동산담보 대출채권을 페이퍼 컴퍼니에 넘기고 부동산을 경매처분하는 방식으로 부실을 정리하는 구조로 은행의 부실채권을 줄이는 동시에 부족한 자금을 조달한다는 취지였다.

지금은 △카드사와 제조업체가 미래의 매출액을 담보로 채권발행 △금융회사가 갖고 있는 대출채권을 기업구조조정회사(CRV)로 이관 △기업이 보유한 부동산을 CR리츠(기업부동산전문회사)로 이관 △프로젝트파이낸싱투자회사(PFC)의 채권발행 등으로 다양화됐다.

▽더 이상 노는 자산은 없다〓페이퍼 컴퍼니를 활용하는 주된 목적은 자본의 회전속도를 높이는 것. 예를 들어 기업이 갖고 있는 건물과 토지 등은 인수하는 데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지만 여기서 발생하는 현금은 매우 적다. 이를 담보로 페이퍼 컴퍼니가 채권을 발행하고 그 대금으로 부채를 갚거나 새로운 영업활동 재원으로 활용하면 생산성이 훨씬 높아진다는 것.

이에 따라 채권의 담보로 들어가는 기초자산은 △상업용 부동산(호텔 콘도 빌딩 병원 임대주택 등) △신용카드 대출 △할부금융(자동차 가전 주택 등) △외상매출채권 △유가증권 등으로 매우 넓어지고 있다.

충정법무법인 조치형 변호사는 “사장(死藏)돼 있지만 잠재성이 높은 자산을 활용해 기업의 유동성을 높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청평CC 골프장의 회원권 및 미래 골프장 수입을 담보로 250억원의 채권을 발행, 이를 공사대금으로 이용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에서는 최근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전속계약권이나 영화사의 판권까지 유동화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 시카고 화이트삭스 구단의 프랭크 토머스는 6년치 연봉을 담보로 2000만달러를, 영국의 팝가수 데이비드 보위는 자신의 앨범 25장의 판매대금을 담보로 5500만달러의 ABS를 발행했다. 미국 뉴욕시는 주차 또는 교통위반 범칙금을 담보로 ABS 발행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신용등급이 높은 것이 장점〓페이퍼 컴퍼니는 기업이나 금융회사가 갖고 있는 디폴트(Default·채무불이행) 위험이 이전되지 않는다는 것이 최대 장점. 부채가 너무 많거나 영업활동이 신통치 않아 시장에서 회사채를 발행할 수 없는 기업에는 아주 적격이다.

우량자산만 페이퍼 컴퍼니로 넘기기 때문에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도 충분히 발행할 수 있다. 여기에다 지급보증과 후순위채 인수 등 신용보강 절차가 들어가기 때문에 부도위험이 별로 없다.

따라서 신용평가기관에서 가장 높은 AAA등급을 받아 발행금리가 8∼9%(수수료 포함)로 낮다.

우리은행 홍대희 투자금융팀장은 “기업의 미래현금흐름을 현재화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거나 현금수입과 지출의 불일치를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기초자산의 범위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시장 가능성은 크다”고 말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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