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발표에 의하면 백궁 정자지구의 토지용도 변경과 관련된 거액 뇌물수수혐의의 수사과정에서 지금까지 14명이 구속됐다. 그리고 파크뷰아파트의 신축사업과 관련해서는 비자금이 114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그 비자금 중 상당 부분이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동시에 부실기업의 회생을 위해 국민이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적자금을 몇몇 기업주가 개인적인 용도로 빼돌렸다는 사실도 재차 거론되었다.
▼정경유착 싹 잘라야▼
권력형 부패나 정경유착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큰돈을 벌고 싶은 유혹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인 만큼 선진국에도 이런 예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사건이 터지자마자 환부를 깨끗이 도려내고 새로운 개혁안을 바로 실천에 옮긴다는 점에서 그 처리과정이 우리와 다르다.
미국에서는 최근 회계부정사건이 터지자 똑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의회에서 즉각 ‘공개기업의 회계개혁 및 투자자보호법’을 통과시켰다. 미국 회계개혁법의 골자는 회계감독위원회를 설립해 기업의 회계부정을 방지하고 회계법인의 업무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동안 업계가 자율적으로 처리하던 기업회계 감독을 독립된 회계감독위원회가 맡아서 하도록 한 것이다. 미국은 이 회계개혁법에서 기업의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리고 회계개혁을 통해 오래된 기업관행이라도 부패의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이면 가차없이 바꿀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기업의 자율성을 최대한 인정해 왔던 미국으로서는 상당한 입장의 변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의 상황을 둘러보면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동안 5대 게이트를 겪으면서 우리의 비자금 관행은 철퇴를 맞았는가. 아니다. 이제 기업들은 더 이상 비자금을 조성하지 못하게 되었는가. 그것도 아니다. 게이트들이 터지기 전이나 지금이나 기업의 비자금 관행은 여전하다. 곧 닥칠 8·8 재·보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얼마나 많은 기업 비자금이 정치판으로 흘러 들어갈까를 상상하면 더 큰 한숨이 쏟아진다. 기업과 권력이 연루된 부패는 합리적인 자원배분을 왜곡시켜 우리 경제를 병들게 한다. 정경유착이 계속되는 한 우리 경제는 기형적 발전의 부작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우리 경제의 대외신인도는 하락하게 될 것이다.
서둘러 정경유착을 끊는 특단의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고위층에 줄을 대 부당한 이득을 보려는 기업가가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유착의 고리를 싹둑 잘라내야 한다. 부패사건이 터졌을 때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리고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하는가 하는 것이 선진국 경제로의 진입속도를 결정한다는 사실임을 유념해야 한다.
정경유착에 대한 대응책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미 드러난 사건을 정밀하게 수사해 관련자들을 엄중하게 처벌하는 일이다.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부패사건들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그 실체를 파헤쳐 범법자들을 신속히 기소해야 할 것이다. 현 정권이 원인을 제공한 부패사건들은 올해 내에 깨끗이 청소해 내야 한다. 그래야 새로 들어서는 정권이 개혁적인 부패방지책을 펼쳐 부패관행을 없애고 깨끗한 사회풍토를 조성해 나갈 수 있게 된다.
▼´회계개혁법´도입 고려할때▼
다른 하나는 기업의 회계부정에 대해 이해당사자가 감시의 시선을 던지도록 하는 것이다. 기업의 회계부정으로 가장 먼저 손해를 보는 사람은 주주들이고 그 다음은 채권자들이다. 한 명의 대주주가 기업의 돈을 불법적인 용도로 사용하거나 개인용도로 빼돌리는 것을 막는 효과적인 방법은 다른 주주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해 그 돈을 되찾아 올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자기 곳간은 자기가 지키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기업의 비자금은 필연적으로 회계부정과 연결되기 마련이다. 비자금 조성을 통한 정경유착이 발붙일 여지가 없어지게끔 기업회계 부정방지제도, 주주의 집단소송제도 등 혁신적인 대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아울러 현 정권에서 유발된 비리사건은 빠른 시일 내에 법적 처리를 하도록 수사에 박차를 가하여야 할 것이다.
이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법학 ´투명성포럼´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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