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은영/´백궁 의혹´ 전모 밝혀라

  • 입력 2002년 7월 25일 18시 40분


엊그제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백궁 정자 게이트에 관한 권력형 부패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었다. 이번에도 기업이 조성한 비자금이 부정한 로비자금으로 사용되고 그 로비자금이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가는 정경유착 의혹이 제기되었다.

검찰의 발표에 의하면 백궁 정자지구의 토지용도 변경과 관련된 거액 뇌물수수혐의의 수사과정에서 지금까지 14명이 구속됐다. 그리고 파크뷰아파트의 신축사업과 관련해서는 비자금이 114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그 비자금 중 상당 부분이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동시에 부실기업의 회생을 위해 국민이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적자금을 몇몇 기업주가 개인적인 용도로 빼돌렸다는 사실도 재차 거론되었다.

▼정경유착 싹 잘라야▼

권력형 부패나 정경유착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큰돈을 벌고 싶은 유혹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인 만큼 선진국에도 이런 예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는 사건이 터지자마자 환부를 깨끗이 도려내고 새로운 개혁안을 바로 실천에 옮긴다는 점에서 그 처리과정이 우리와 다르다.

미국에서는 최근 회계부정사건이 터지자 똑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의회에서 즉각 ‘공개기업의 회계개혁 및 투자자보호법’을 통과시켰다. 미국 회계개혁법의 골자는 회계감독위원회를 설립해 기업의 회계부정을 방지하고 회계법인의 업무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동안 업계가 자율적으로 처리하던 기업회계 감독을 독립된 회계감독위원회가 맡아서 하도록 한 것이다. 미국은 이 회계개혁법에서 기업의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리고 회계개혁을 통해 오래된 기업관행이라도 부패의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이면 가차없이 바꿀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기업의 자율성을 최대한 인정해 왔던 미국으로서는 상당한 입장의 변화라고 평가할 수 있다.

우리의 상황을 둘러보면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동안 5대 게이트를 겪으면서 우리의 비자금 관행은 철퇴를 맞았는가. 아니다. 이제 기업들은 더 이상 비자금을 조성하지 못하게 되었는가. 그것도 아니다. 게이트들이 터지기 전이나 지금이나 기업의 비자금 관행은 여전하다. 곧 닥칠 8·8 재·보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얼마나 많은 기업 비자금이 정치판으로 흘러 들어갈까를 상상하면 더 큰 한숨이 쏟아진다. 기업과 권력이 연루된 부패는 합리적인 자원배분을 왜곡시켜 우리 경제를 병들게 한다. 정경유착이 계속되는 한 우리 경제는 기형적 발전의 부작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우리 경제의 대외신인도는 하락하게 될 것이다.

서둘러 정경유착을 끊는 특단의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고위층에 줄을 대 부당한 이득을 보려는 기업가가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유착의 고리를 싹둑 잘라내야 한다. 부패사건이 터졌을 때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리고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하는가 하는 것이 선진국 경제로의 진입속도를 결정한다는 사실임을 유념해야 한다.

정경유착에 대한 대응책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미 드러난 사건을 정밀하게 수사해 관련자들을 엄중하게 처벌하는 일이다.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부패사건들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그 실체를 파헤쳐 범법자들을 신속히 기소해야 할 것이다. 현 정권이 원인을 제공한 부패사건들은 올해 내에 깨끗이 청소해 내야 한다. 그래야 새로 들어서는 정권이 개혁적인 부패방지책을 펼쳐 부패관행을 없애고 깨끗한 사회풍토를 조성해 나갈 수 있게 된다.

▼´회계개혁법´도입 고려할때▼

다른 하나는 기업의 회계부정에 대해 이해당사자가 감시의 시선을 던지도록 하는 것이다. 기업의 회계부정으로 가장 먼저 손해를 보는 사람은 주주들이고 그 다음은 채권자들이다. 한 명의 대주주가 기업의 돈을 불법적인 용도로 사용하거나 개인용도로 빼돌리는 것을 막는 효과적인 방법은 다른 주주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해 그 돈을 되찾아 올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자기 곳간은 자기가 지키도록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기업의 비자금은 필연적으로 회계부정과 연결되기 마련이다. 비자금 조성을 통한 정경유착이 발붙일 여지가 없어지게끔 기업회계 부정방지제도, 주주의 집단소송제도 등 혁신적인 대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아울러 현 정권에서 유발된 비리사건은 빠른 시일 내에 법적 처리를 하도록 수사에 박차를 가하여야 할 것이다.

이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법학 ´투명성포럼´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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