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정은/증인석의 거짓말

  • 입력 2002년 7월 25일 18시 40분


‘양심에 따라 진실만을 말하고 거짓이 있을 경우 법에 따라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법정에 나온 증인은 누구나 증인석에 앉기 전에 오른손을 들고 이렇게 선서를 한다. 하지만 80여일 동안 진행돼온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의 알선수재사건 공판은 이런 맹세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한 상황을 놓고 검찰 측과 피고인 측 증인들의 진술이 매번 엇갈렸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정보원 전현직 직원들 사이의 다툼은 한심하기까지 했다.

국정원 직원 문모씨는 “사건 당일 김은성(金銀星) 전 국정원 2차장과 함께 권 전 고문의 집까지 갔다”고 주장했다.

당시 권 전 고문에게 5000만원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MCI코리아 소유주 진승현(陳承鉉)씨가 아예 현장에 없었다는 것이 문씨 주장의 핵심이다.

반면에 돈을 전달했다고 주장하는 김 전 차장은 “문씨가 내 승용차 오른쪽 뒷좌석에 탔다고 했는데 6급 직원을 ‘상석’에 앉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운전사가 법정에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사실 관계를 입증할 다른 증거도 없었고 공판은 ‘어느 국정원 직원이 거짓말을 하느냐’는 공방으로 변질됐다.

법원은 25일 “문씨 등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며 권 전 고문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변호인단이 “김 전 차장이 악감정을 품고 허위 증언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항소심에서도 공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심 판결대로라면 국정원 직원이 전직 상사의 진실된 주장을 무시하고 위증을 한 셈이다. 2심에서 결론이 다르게 나오더라도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법정을 우롱한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공무원의 위증을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다. 르윈스키 스캔들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탄핵소추 위기까지 몰렸던 이유는 ‘여자 문제’가 아니라 국회에서 위증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정은기자 사회1부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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