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 나온 증인은 누구나 증인석에 앉기 전에 오른손을 들고 이렇게 선서를 한다. 하지만 80여일 동안 진행돼온 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고문의 알선수재사건 공판은 이런 맹세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한 상황을 놓고 검찰 측과 피고인 측 증인들의 진술이 매번 엇갈렸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정보원 전현직 직원들 사이의 다툼은 한심하기까지 했다.
국정원 직원 문모씨는 “사건 당일 김은성(金銀星) 전 국정원 2차장과 함께 권 전 고문의 집까지 갔다”고 주장했다.
당시 권 전 고문에게 5000만원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MCI코리아 소유주 진승현(陳承鉉)씨가 아예 현장에 없었다는 것이 문씨 주장의 핵심이다.
반면에 돈을 전달했다고 주장하는 김 전 차장은 “문씨가 내 승용차 오른쪽 뒷좌석에 탔다고 했는데 6급 직원을 ‘상석’에 앉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운전사가 법정에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사실 관계를 입증할 다른 증거도 없었고 공판은 ‘어느 국정원 직원이 거짓말을 하느냐’는 공방으로 변질됐다.
법원은 25일 “문씨 등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며 권 전 고문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변호인단이 “김 전 차장이 악감정을 품고 허위 증언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항소심에서도 공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심 판결대로라면 국정원 직원이 전직 상사의 진실된 주장을 무시하고 위증을 한 셈이다. 2심에서 결론이 다르게 나오더라도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법정을 우롱한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공무원의 위증을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다. 르윈스키 스캔들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탄핵소추 위기까지 몰렸던 이유는 ‘여자 문제’가 아니라 국회에서 위증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정은기자 사회1부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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