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에 나타난 ‘친일역사청산과 관련된 TV 특집방송을 추진해 한나라당 이 후보 부친의 친일의혹을 재등장시켜야 하고, 이에 앞서 시민단체와 학계에서 문제제기를 하도록 유도하며, 시사잡지 학술지 인터넷매체를 이용해 이 후보와 지식인층을 격리시켜야 한다’는 내용은 섬뜩한 느낌마저 준다. ‘세풍’을 재점화해야 한다거나, 한나라당내 이념논쟁을 촉발시켜야 한다는 부분에서는 다가올 사회불안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한마디로 재집권을 위해 공작적 수법을 동원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그 발상의 음모성이 더욱 개탄스럽다. 지난해 언론사 세무조사과정에서 잇따라 불거졌던 이른바 언론대책 문건들과 성격이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다. 당시 이들 문건도 성공적인 언론개혁을 위해 방송 등 친여 매체와 시민단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실제로 문건대로 상황이 전개된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다.
집권세력의 머리에는 아직도 여전히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공작’이 필요하다는 시대착오적 생각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군사독재 시절에나 가능한 일들이 누구보다도 민주주의를 강조해온 김대중(金大中) 정권에서도 그대로 진행되고 있으니 서글픈 일이다.
민주당은 당 외곽 연구기관 실무자가 작성한 것이라며 그를 징계하기로 하는 등 이번 일을 개인적 사안으로 축소해 가는 분위기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건이 발견될 때마다 ‘당에 보고되지도 않았다’며 잡아떼던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그렇게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민주당은 문건의 작성경위 보고라인 등과 함께 실제로 이 문건이 어떻게 실행됐는지 진상을 철저히 밝히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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