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교수의 짧은 서평이 근거 없는 인상비평으로 그쳐버린 일차적인 이유는 직업적으로 글 쓰는 사람들이 누구나 겪게 되는 지극히 인간적인 갈등에서 찾을 수 있다. 홍 교수는 무엇보다 해당 저서에 대한 내실 있는 평보다는 피상적인 언급으로 일관한 나머지, 독자들이 해당 저서의 주제나 내용 자체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 버렸다.
“철학하는 임홍빈 교수가 세계화의 문제를 다뤘다는 것에 대해 크게 안심한다”는 언급마저도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동료 철학자의 세계화론에 대해 크게 ‘안심’했던 평자는 본인의 저서가 “철학적이 아니라는” 준엄한(?) 평결을 내림으로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본인의 저서가 ‘철학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홍 교수가 언급한 내용은 거창하기 짝이 없다. ‘세계화의 철학적 담론’은 거시적이고 포괄적인 조망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인간 실존과 연관시켜 그 심층을 투시하도록 하기에는 아직 사고가 예열(豫熱)되지 않은 느낌”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서평자는 이 지점에서 결정적으로 ‘논점일탈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내가 이 저서에서 탐색한 것은 중층적 세계화를 가능케 하게 만든 문명의 조건들이지, 결코 개인적 실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내가 과제로 설정하지도 않은 문제의 해결을 내 책 속에서 찾아 헤맨 모양이다.
더구나 평자는 나의 대안이 “단편적”이라고 비판하지만, 불과 300쪽 남짓한 소박한 저서에서 시장일변도의 세계화에 따른 역기능을 총체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만병통치의 처방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엉뚱하지 않은가.
나는 단지 노동의 위기나 경제의 윤리성, 매체와 지식의 정치적 성격, 인권이념의 보편성 등 세계화시대에 전형적으로 부각되었던 몇 가지 핵심적 쟁점을 중심으로 내 나름의 ‘정치철학’을 제시했을 뿐이다. 거창한 세계관이나 인간의 실존에 관한 심오한 철학을 제공하려는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홍 교수의 서평에서 생산적일 수 있었던 언급은 오직 국가와 시민의 관계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공화주의에 대해 호의적인 저서의 입장은 일부 시민운동가나 좌파 지식인들이 주장하는 ‘시민사회’ 중심의 급진민주주의론과 확연히 구별된다. 나는 세계화 반대론자들이 다분히 소박한 당위론이나 도덕주의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세계화는 근대화와 마찬가지로 문명의 제반 속성이 가시화된 불가피한 과정이기 때문에국가의 관점을 간과한 시민사회론 자체가 허구적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홍교수는 ‘국가철학’을 지향한 본인의 견해를 타당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시민’의 정치철학이 저자의 저술의도에 더 잘 부합된다는 자가당착적인 언급으로 서평을 서둘러 마무리 해버렸다. 책의 내용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채, 왜곡과 어설픈 촌평 등으로 범벅이 된 서평은 독자나 저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임홍빈(고려대 교수·철학) limhb@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