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증여론' '재단이란 무엇인가'

  • 입력 2002년 7월 26일 17시 30분


◇증여론/마르셀 모스 지음/303쪽 2만원 한길사

◇재단이란 무엇인가:세계의 재단과 민간 기부/헬무트 안하이어·슈테판 퇴플러 엮음 재단연구회 옮김/432쪽 1만9000원 아르케

“선물을 받지 않을 만큼/ 손님을 대접하는 데 인심이 후하고 마음씨가 넓은 사람을/ 나는 이제껏 본 적이 없다/ …/ 서로 선물에 답례하는 자들은/ 만일 그 물건들이 잘 쓰인다면/ 언제나 변함없는 친구가 된다.”

이것은 북유럽의 고대시 ‘하바말’의 한 구절이다. 프랑스 출신의 인류학자인 마르셀 모스(1872∼1950)는 이 시를 인용하며 대표작인 ‘증여론’을 시작한다.

누구든 선물 받기를 원하고, 선물을 줬으면 답례를 기대한다. 상호간의 증여를 통해 ‘관계’가 유지된다. 하지만 이것은 경제적 등가교환의 원칙에 따른 물건의 교환과 다르다. 모스에 따르면 선물의 증여와 답례는 단순한 경제적 가치의 교환이 아니라 사회를 유지시키는 의사 소통의 방법이다.

그는 이윤의 추구와 효용의 극대화, 경쟁과 이기주의가 만연한 자본주의 사회가 성립된 것은 최근의 일이라고 지적한다. 선물의 증여와 답례는 결혼 축제 의식 춤 잔치 시장 등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는 유지되고 통합된다.

▼단순 가치 교환아닌 사회통합 기능▼

모스의 책이 경제적 관계를 넘어서는 ‘증여’의 문제를 인류학적 관점에서 다뤘다면, ‘재단이란 무엇인가’는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중요한 비(非)자본주의적 활동인 ‘기부’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다.

모스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일반적으로 ‘재단’을 통해 이뤄지는 ‘기부’도 자본주의 사회를 건전한 공동체로 유지시키는 기능을 하는 ‘증여’와 ‘답례’의 한 형식이다. 기업가는 그 사회의 안정적 작동을 기반으로 부를 축적하고, 다시 사회의 안정을 위해 ‘기부’라는 형식으로 사회에 증여 또는 답례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돈을 번 사람이나 기업이 사회에 환원을 하지 않더라도 크게 비난받지 않을 뿐 아니라, 사회적 기여 없이도 돈만 있으면 상류사회에 진입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는 한국의 사회적 풍토에서는 아직 기부의 문화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국내 각 재단 실무자들의 연구모임인 ‘재단연구회’(www.foundation.or.kr)는 한국사회에서 건전한 기부 문화가 형성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며 재단(財團·foundation)의 의미와 역사, 세계 각국의 재단 현황과 기부 문화 등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이 책을 번역해 냈다.

재단연구회는 대우재단, 아산재단, 학술진흥재단, 과학재단 등 국내 각 재단의 실무자 10여 명이 재단 관련 정보교류 및 재교육 등을 목표로 1995년에 설립한 모임으로, 기부문화의 확산 및 기부의 제도화 조직화 전문화를 위한 연구 조사 분석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 ‘재단’이란 흔히 기업 이익의 사회환원 수단이란 의미와 함께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기구, 기업의 선전을 위한 홍보수단, 정치자금의 세탁소 등의 부정적인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재단은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많은 영역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사회발전의 필수적 요소가 돼 가고 있다.

현재 국내의 재단은 약 3500개로 적지 않은 숫자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18세 이상 성인 중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약 2%로 20%를 넘어선 일본의 10분의 1 수준이다.

국내 재단의 경우 대부분 오너 중심 운영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기부 규모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이로 인해 활동도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차츰 긍정적인 변화도 보이고 있다. 최근 들어 삼성문화재단,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등 결산 내역을 공개하는 재단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재단별로 특성 있는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예컨대 교보문고에서 지원하는 대산문화재단은 문학 관련 사업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인천의 새얼문화재단은 지역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설립한 재단으로 지역문화발전을 위한 활동을 벌인다.

▼국내재단 활동 아직 걸음마 단계▼

재단이 가장 활발히 역할을 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는 1900년대 초 평생을 바친 철강기업을 정리하고 교육문화사업에 투신하며 미국 전역에 약 2500개의 도서관을 지어 국가에 헌납했고, 그 후 기부문화의 확산으로 현재 미국에는 포드재단, 록펠러재단 등 4만여 개의 재단이 활동하고 있다. 카네기가 도서관을 헌납한 지 1세기가 된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인 빌 게이츠는 1만2000개 도서관을 네트워크로 연결시키는 문화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특히 사회에서 소홀히 되기 쉬운 기초학문분야와 순수 문화예술분야에 집중 투여되며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현재 약 10만개의 재단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더 많은 부의 축적을 위한 경제활동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의 유대감을 비롯한 많은 것들을 희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고 받는 것보다 사고 파는 것에 더 익숙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경제 외적 활동으로 간주되는 증여 기부 선물 답례 등은 바로 그 사회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무형의 기반을 제공한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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