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 입력 2002년 7월 26일 17시 30분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김도연 지음/295쪽 8500원 문학동네

꿈에서 깬 장자는 되뇌인다.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오늘날 동서양의 문학작품을 통해 자주 변주되는 호접몽(胡蝶夢)의 주제 또는 기법이다.

김도연의 소설들 또한 그렇다. 화자는 현실과 꿈의 두 층(層)을 넘나들며, 그 층들은 때로 역전되고 중첩되거나 경계를 상실한다. 그러나 이 작가의 주인공은 꿀을 따러 꽃에서 꽃을 날아다니는 ‘호접’과 거리가 멀다.

회복할 수 없는 사랑의 상실 또는 헤어날 수 없는 존재의 미로에 얽혀있는 주인공은 꿈과 현실 속을 한없이 왕복하면서 그 ‘출구의 없음’에 숨막혀한다.

‘검은 눈’에서 여행을 떠난 부모를 대신해 수십 마리 가축의 건사를 책임지게 된 ‘나’는 실연의 슬픔에 못이겨 술을 마시고 깊은 잠을 잔다. 인간의 말로 불평하는 가축들을 달래다 못해 먹이를 주고, 다투고, 연인의 목소리로 불평을 하는 닭과 다툼하던 그는 결국 굶주린 개들에게 뜯겨 있는 자신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징집된 사내를 다룬 ‘야하고 묘하고 혹한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힘들여 꿈에서 헤어나지만 애써 돌아온 현실마저 최초의 꿈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사실에서 한 걸음 비껴 있으려 했으나 실제로는 사실이 먼저 그를 비껴갔다…. 자신이 피해 달아나던 허공의 현실이 결국 가장 잔인한 현실인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그는 소설가가 되었다.” (문학평론가 황현산)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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