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아이들에게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자신의 마음을 누구에게든 표현할 수 있는 아이라면 문제가 생긴다 해도 잘 해결할 수 있겠지만, 아직 표현력이 부족한 아이는 누군가 먼저 알아채기 전까지 내면에 문제를 쌓아두기 십상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이 책의 주인공 ‘로베르트’를 소개할까 한다.
새 집으로 이사 온 로베르트는 주변의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밖에 나가 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친구가 없으니 그것도 내키지 않는다. 뭘 할까? 재미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멍하니 벽지 무늬를 바라보다가 얼룩처럼 보이는 점에 눈과 눈썹을 그려본다. 벽지에 자기 그림자가 비친다. 그림자에게 말을 걸어본다. 어? 그런데 그림자가 벽지 밖으로 걸어 나온다. 그 애의 이름은 트르베로. 거꾸로 읽으면 로베르트이기도 한 트르베로는 이제 로베르트의 친구가 되어 숙제도 대신 해줄 만큼 둘도 없는 사이가 된다.
심심증은 해결됐는데 아직 학교 생활의 적응이 남아 있다. 반에서 제일 힘 센 아이가 자꾸 로베르트를 괴롭힌다. 그것도 맘에 드는 여자친구 앞에서 말이다. 아직 그 여자친구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로베르트는 작은 오해를 하게 되고, 다시는 친구를 사귀지 않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친구를 간절하게 원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오해가 풀리고 둘은 친구가 된다.
현실에서의 친구가 생기자 트르베로는 로베르트를 찾지 않는다. 로베르트가 벽지 무늬에 그린 눈을 지우개로 지운 것이다.
로베르트는 자신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상상의 아이를 만들어 그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현실을 외면하는 아이는 아니다. 자기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 적극적인 면이 강한 아이다. 스스로 친구를 만들어 내고 즐겁게 지내는 점이나, 힘에서 밀리더라도 하고 싶었던 말은 해버리는 모습, 오해를 풀기 위해 보여주는 행동 따위에서 로베르트의 적극성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작가가 어린 독자들에게 내심 기대하고 있는 점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인 파울 마어는 ‘아기 캥거루와 겁쟁이 토끼’ ‘기차 할머니’와 같은 저학년 동화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바 있는데, 일상에서 흔히 생길 수 있는 일들을 경쾌한 문장으로 그리고 있다.
오혜경(주부·서울 강북구 미아동)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