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결혼하기 싫은 이유

  • 입력 2002년 7월 26일 18시 46분


지난 봄 미국 CBS TV의 시사프로 ‘60분’에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의 여학생 둘이 나왔다. “결혼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남자한테 내가 하버드대에 다닌다고 말하는 순간 수소폭탄이 터진 것처럼 썰렁해지거든요.” 남자는 자기보다 좀 ‘못한’ 배우자를 원하는 반면 여자는 그 반대여서 배운 여자일수록 결혼이 쉽지 않다며 그들은 복잡한 미소를 지었다. 남자들은 동반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아무 소리 없이 애들 엄마 겸 가정경영인 겸 온갖 뒷바라지를 해줄 해결사를 구하는데, 요새 어떤 여자가 그런 삶을 좋아하겠느냐고도 했다.

▷지금 미국에서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전통적 핵가족’의 비율이 25% 정도에 불과한 것도 이 같은 고학력 고소득 여성들의 증가와 관련이 깊다. 결혼에 목매는 대신 아예 혼자 살거나 동거만 하는 대안적 가족도 자리잡았다. 그래서 미국의 갓난아기 셋 중 하나는 혼인 외 출생이다. 유럽은 더하다. 사랑은 예스지만 결혼은 ‘아마도’가 된 지 오래다. 일본에도 이런 조짐이 나타난다. 통계청에서 부부와 자녀가 함께 사는 가구가 2000년 48.2%에서 2020년이면 41.5%로 줄고 1인 가구와 편부모 가구가 늘 것이라며 “여성들의 결혼기피 등으로 가구 구성이 ‘선진국형’으로 변하고 있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단순 명쾌하게 말한다면 ‘하는 순간부터 손해’라는 인식 때문이다. 총각이 결혼하면 갑자기 몸도 좋아지고 혼자 쓰기도 모자랐던 빤한 월급조차 차곡차곡 모이는 반면 여자, 특히 직장을 가진 여성은 일과 집 양쪽에서 눈총을 받지 않으려고 동동거려야 한다. 사랑의 이름으로 아무리 열심히 살림을 하고, 심지어 ‘남편을 박사로 만들어도’ 보수적 남편한테서 “머리를 잘라 팔았단 말인가, 무슨 희생을 했나” 같은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이다. 만혼이나 독신을 택하는 여성, 아이를 안 낳거나 이혼을 청구하는 주부가 증가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출생성비도 무너져 여자아이들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 요즘이다. 따라서 앞으로 남성이 총각귀신이 되거나 홀아비로 늙지 않으려면 다음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첫 번째는 능력과 권력 돈 같은 걸로 여성을 꼼짝못하게 제압하는 거다. 두 번째는 세상 변화를 거부하는 대신 다시 갓 쓰고 도포 입고 다니기다. 아니면 여성 발전을 나의 발전으로 여기며 더불어 조화롭게 사는 방법도 있는데,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드시는지?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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