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과 사람<31>]하늘 품은 천지 ´백두산´

  • 입력 2002년 7월 26일 18시 51분


울창한 수림 [사진=서영수기자]
울창한 수림 [사진=서영수기자]

《백두산(白頭山)은 한반도의 등줄기 백두대간의 출발점이자 송화강과 압록강, 두만강의 시원이 되는 천지(天池)를 품은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한민족 개국신화의 배경이기도 하다.

중국 옌지(延吉)에서 자동차로 4시간. 용정과 이도백하진을 거쳐 달리다보면 차창밖 풍경은 자작나무와 전나무, 미인송이라 불리는 소나무들이 쭉쭉 뻗은 숲이 펼쳐진다. 그러나 수목생장한계 지점인 해발 1700m을 지나면서 풍경은 키작은 관목과 풀 일색으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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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950m 지점에 있는 천지대문에서 입장료를 내고 30분을 더 달리면 천지폭포를 배경으로 호텔과 산장 등이 즐비한 백두산 자락에 닿는다.

등반객을 제외한 관광객 대부분은 이곳에서 중국 당국이 운영하는 8인승 지프를 타고 15분간 구불구불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백두산 정상 바로 아래 주차장까지 가는 길을 택한다. 주차장에서 불과 150m 위가 천지가 내려다보이는 천문봉이다.

취재진이 이곳을 찾은 16일과 17일, 백두산에는 내리 비가 왔다. 그러나 300여명의 관광객은 아랑곳않고 안개가 피어오르는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백두산에는 해마다 성수기면 하루 최고 3000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온다.

천지를 병풍처럼 둘러싼 봉우리중 5분의 2는 중국이, 나머지는 북한이 관할하고 있다.그래서 중국쪽에서 북한측에 있는 최고봉인 장군봉(2750m)을 바라다보는 한국인들은 누구나 북한쪽에서 천지를 내려다볼 날을 그린다.

중국은 60년대에 백두산 일대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80년대에 들어 외부에 공개했다. 현재 천지와 백두산은 특별행정기관인 ‘장백산보호구’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들은 관광사업을 위해 천지문 입구에서부터 정상인 천지까지 상하 2차선 시멘트포장도로를 놓았고 백두산 정상 바로 밑에는 산을 평평하게 깎아 주차장을 만들었다.

주차장 한쪽엔 돌과 벽돌 몇장을 쌓아 만든 간이쓰레기장과 간이화장실이 있어 바람이 불면 악취가 풍긴다. 주차장에서 천지에까지 적당히 발디딜 곳을 깎아만들어 놓은 언덕길 역시 흙이 짓밟혀 무너져내리고 있다.

그러나 옌벤대 로장화(盧長和) 연구원은 “관광객들로 인한 훼손은 아직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백두산에 손쉽게 올라갈 수 있는 관광코스가 정해져 있어 오히려 다른 지역의 오염을 막을 수 있다는 것.

백두산 속 해발 1200m 지점에는 조선족 200여명이 살아가는 '하늘아래 첫 동네' 내두마을이 있다. 닷새만에 한번씩 자동차가 들어가는 이 오지 마을에도 소위 '코리안 드림' 바람이 불었다. 마을에는 한국입국을 시도하려다 사기를 당하는 등 상처받고 살아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진=서영수기자]

그 유명한 ‘백두산 호랑이’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도 반가운 일이었다. 올 1월 훈춘 한 마을에 각기 다른 호랑이가 4마리나 나타나 사람을 해치기도 했다고 한다. 백두산 속 해발 1200m 지점에는 마을사람들이 ‘하늘아래 첫 동네’라는 부르는 ‘내두마을’이 있다. 윗마을 아랫마을 합쳐 60여호 200여명이 살아가는 이 부락은 한집을 뺀 모든 집이조선족이다.

20여년간 윗마을에서 살아온 류선기(柳善基·67)옹은 강원도 금화군 출신. 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날씨에 5일마다 들어서는 장날에만 타지로 나가는 버스가 운행되는 여건이지만 그는 아들 둘 내외와 함께 집한칸에서 살며 척박한 산골 논밭을 1만5000평이나 일구고 있다.

“TV를 통해 남조선 소식을 다 알고 있다”는 그는, “이곳 생활이 다른 중국지역보다 풍족한 편”이라고 말한다. 워낙 작은 변방 마을이라 정부가 세금을 감면해주기 때문이다.

이 오지 마을에도 ‘코리안드림’의 바람이 불었다. 이 마을 현호(玄虎·32) 촌장은 마을 유일한 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하기도 한 엘리트 젊은이. 이런 그도 한국입국을 꾀하다가 사기 브로커에게 푼푼이 모은 돈 2만위안(300만원)만 날리고 다시 고향에 돌아왔다고 한다.

5년간 두부를 만들어 팔아 ‘두부할머니’로 알려진 박금자(朴今子·59) 할머니는 “73년경에는 800명을 자랑하던 마을인구가 갈수록 줄어 200여명만 남았다”고 전한다.

6월 첫째주부터 9월초까지 한여름 성수기에 백두산을 찾는 관광객수는 약 13만명(내국인 8만, 외국인 5만). 1인당 천지 입장료와 지프승차요금을 합하면 중국돈 140위안(약 2만1000원)으로 여름철 천지 관광수입은 입장수입만 중국돈 2000만위안(30억원)이 넘는다. 중국으로선 큰 수입원인 셈이다. 이렇다보니 중국당국은 관광사업을 통해 한푼이라고 벌어들이려 하고 현지인들은 한국인 관광객에게서 ‘대박’을 기대한다.터무니없는 바가지가 씌워지기도 한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곳 주민들은 그 산 때문에 돈을 벌기도 하지만 역시 그 산 때문에 점차 순수함을 잃어가고 있었다.산과 사람의 관계가 만드는 역설이었다.

백두산〓서영아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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