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희 할머니의 도전! 게임왕②]나의 젊은 친구들

  • 입력 2002년 7월 28일 17시 21분


“할머니, 저 좀 업고 달려주세요”

저같은 늙은이에게 게임이 즐거운 이유는 따로 있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게만 느껴지고, 사는 게 서툴러 보이고, 내 자식처럼 불안하기만했던 젊은이들. 이들이 손 아랫사람이 아닌 친구로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게임을 같이 하면서 온라인 상에서 친해진 서울의 한 20대 아가씨가 있었어요. 알고 보니 남자친구가 제 PC방이 있는 김포에 살고 있었고, 그 친구는 종종 저희 PC방에 들르기도 했습니다. 낮에는 일이 바빠 서로 만나지 못하는 두 사람은 거의 매일 밤 온라인으로 만나 함께 게임을 하면서 ‘회포’를 풀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게임을 하던 중 아가씨가 채팅으로 제게 고민을 털어놨어요.

▼관련기사▼

- [양선희 할머니의 도전!게임왕①]

“할머니 저 속상해 죽겠어요.”

“왜?”

“승규씨(가명) 미워 죽겠어요.”

“왜, 싸웠어?”

“네, 요즘에는 게임에도 잘 안 들어오고….”

갖고 있던 아이템을 하나 주면서 제가 말했습니다.

“이 아이템 갖고 있다가 남자친구 보이면 주웠다고 해요 ^^.”

퇴근 후 PC방에 온 승규씨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승규씨, 아까 아가씨가 좋은 아이템 주웠다고 막 자랑하던데?”

승규씨는 자리에 앉자 마자 게임에 접속했습니다. 옆에 가서 봤더니 채팅으로,

“자기야 그 아이템 나 줘라, 평소 갖고 싶던 것이었어. 뽀뽀해줄게, 뽀뽀∼b!”

조금 있다 보니까 두 사람이 히히 호호대면서 함께 몬스터를 잡고 있더군요.

지난주부터 두 사람은 함께 결혼식장을 알아보러 다닌답니다. 아가씨는 “그때 할머니가 아이템 안 주셨으면 저희 결혼 못했을지도 몰라요”라며 고마워해요. 물론 승규씨는 아직도 그 아이템을 아가씨가 주운 것으로 알고 있답니다.

젊은 친구들이 언제나 제게 고마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온라인게임 ‘레드문’(www.redmoon.co.kr)에서 제가 하는 ‘한지화’ 캐릭터는 다른 캐릭터보다 빨리 뛰는 재주가 있습니다. 제가 몬스터를 잡으려고 열심히 앞으로 뛰면 같이 뛰던 다른 어린 친구가 헉헉거리며 볼멘소리를 해요.

“할머니 천천히 좀 달리세요 도저히 못 쫓아가겠어요. ㅜㅜ(우는 모습)”

“시려∼, 젊은 사람이 힘도 없네.”

“ㅅㅅ(크게 웃는 모습), 할머니가 저 업고 달리면 안 될까여? ㅎㅎㅎ(하하하의 줄임말)”

shyang45@yahoo.co.kr

▼아이템이란▼

게임상의 주인공이 착용하거나 마시는 옷과 무기, 악세서리 마법의 약 등. 힘을 키우거나 에너지를 채워주는 기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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