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으로는 성과 위주 인사시스템이 확산되면서 각 직원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보상, 핵심인력과 비(非)핵심인력에 대한 처우 등 인력의 안정성 유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대세(大勢)가 된 능력 위주 보상체계〓연봉제와 성과급 등 능력급제가 대기업들의 보상제도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대기업 10곳 가운데 9곳에 가까운 87%가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동안 성과급 위주의 보상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노조 등의 반대로 외환위기 이전에 연봉제를 실시한 기업은 18%에 불과했다.
또 다른 성과급 시스템 가운데 하나인 ‘집단성과 배분제’는 49%의 기업이 실시하고 있었다. 또 ‘현재 도입을 준비중이거나 앞으로 도입할 계획’이라는 응답도 26%나 됐으며 ‘도입계획이 없다’는 20%였다.
직원들의 소속감과 사기를 높이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우리 사주제’, 또는 ‘종업원 지주제’는 62%가 실시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연봉제에 대한 저항도 남아 있다. 현재 생산직에서 연봉제를 실시하는 비율은 46%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이는 생산직에 아직 강하게 남아 있는 연공서열적 직급체계와 노조의 강력한 반대 등 때문으로 분석됐다.
▽‘그물형’에서 ‘낚시형’으로 바뀐 채용시스템〓이번 조사에서 2001년 실시한 신규인력 채용에서 정기채용은 53%, 수시채용비율은 47%로 거의 절반씩이었다. 97년에는 71% 대 29%였다.
정기채용도 과거의 그룹별이 아니라 부서별 필요인력을 취합해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뽑는 계열사별 채용방식이었다. 이에 따라 ‘그룹 입사동기’라는 말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대학이나 고교를 갓 졸업한 신규졸업자 대 경력자의 채용비율도 97년에는 81% 대 19%였으나 2001년에는 69% 대 31%로 바뀌었다. 특히 핵심 대기업인 삼성과 LG의 주요 계열사들은 경력자 채용 비중이 40%대까지 올라가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채용 기준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대졸 사원 채용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복수응답)에 기업들은 면접점수(71%)를 가장 먼저 꼽았다. 그 다음이 전공분야(50%), 적성검사(16%), 학교성적(16%), 출신학교(14%), 필기성적(9%)의 순이었다.
▽‘스피드 경영’ 등 기타 변화〓조사에 응한 기업의 올해 5월 말 현재 직급체계는 6.9개로 1997년 말의 7.9개보다 한 단계 줄었다. 결재단계도 3.7개로 4.1개보다 약간 줄어 ‘스피드 경영’으로의 변화가 뚜렷했다. 특히 LG 각 계열사의 직급체계는 외환위기 이전 10단계에서 지금은 4, 5단계로 절반 이하로 단축돼 눈길을 끌었다.
조사대상 기업의 외국인 지분도 97년 말 6∼7%였던 것이 2002년 5월 말 현재는 21.5%로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향후 인사제도의 핵심과제(주관식)로는 ‘성과 중심의 인사제도 정착’이라는 대답이 37%로 가장 많았다. 또 ‘공정한 평가제도’와 ‘합리적 보상제도’라는 응답도 각각 19%와 14%에 이르러 ‘능력 성과’위주로 바뀌는 데 따른 공정한 평가틀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전문가 진단▼
대기업들의 인사시스템 변화 조사 결과에 대해 기업 및 연구기관의 전문가들은 “전체적인 변화 방향은 이미 감지(感知)됐지만 실제로 확인된 변화의 폭이 예상보다 훨씬 크고 빨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성과를 중시하는 이같은 전환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까운 시대적 요구여서 앞으로 이런 추세는 더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LG전자의 인사담당임원인 김영기(金榮基) 부사장은 “연봉제 도입이나 수시 채용 및 경력자 채용 비중 상승 등은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기업들이 본격 추진하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던 부분”이라며 “외환위기라는 위기의식이 선진 인사제도 도입을 앞당기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풀이했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에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으로 손꼽히는 두산그룹의 김명우 인사기획팀장은 “두산도 연봉제가 정착돼 이제 같은 직급이라도 급여 차가 30%에 이른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연봉제로 급전환되면서 공정한 평가에 대한 틀을 제대로 마련하는 것과 비(非)핵심인력에 대한 관리가 큰 과제로 떠올랐다고 강조했다. 그는 “핵심인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10∼20% 정도인 핵심인재 관리에 치중하다 보면 나머지 인력이 자포자기해 대충 일하게 되는 등 후유증도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김정한(金廷翰) 연구위원은 “수시 채용이나 경력사원 채용이 늘어나는 것은 기업이 따로 재교육을 시키지 않고도 즉시 실무에 투입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하지만 국가적으로 볼 때는 ‘청년실업’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성과주의 인사의 명암과 제언’이란 보고서에서 한국의 기업들이 성과주의를 도입하면서 △지나친 개인별 차등 폭 확대 △금전적 보상에만 치중 △단기적 성과에 초점 △눈에 보이는 재무성과만을 중시 등의 이유로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