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햄버거가 무서워

  • 입력 2002년 7월 28일 19시 03분


5월 미국 캘리포니아의 프리몬트 고교에선 ‘문화 전쟁’이 벌어졌다.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학교 식당 대신 줄지어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햄버거를 사먹고 온 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햄버거인데 이제 학교에서 그걸 안 판다지 뭐예요.” 아이들의 볼멘소리다. 학생들의 비만과 당뇨를 막기 위해 학교 측이 비장하게 내놓은 정책이 ‘정크푸드 교내 판매금지’였다. 하지만 이미 이에 ‘중독’된 10대들은 햄버거를 끊고는 못 사는 모양이었다.

▷미국 학교음식서비스의 조사에 따르면 공립고교의 30%는 아예 패스트푸드점이 학교에 들어와 햄버거를 판다. 어린이 청소년 4명 중 1명은 뚱뚱하고 8명 중 1명은 병적 비만인 것도 패스트푸드가 큰 몫을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어려서부터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는 장난감에 홀려 햄버거에 인이 박인 미국 성인들은 오늘도 4분의 1이 패스트푸드점을 찾아 1주일에 햄버거 3개, 프렌치프라이 4통을 먹는다.

▷그냥, 맛있게, 많이 먹는 정도면 굳이 사람이 햄버거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을 터. 문제는 이들 회사가 판매량을 늘릴 목적으로 인간을 유혹한다는 데 있다. 보통 크기의 햄버거 1개면 양이 충분할 텐데도 패스트푸드점에선 사이즈를 키워 싸게 판다. 사실 유혹 중에서도 거부하기 힘든 게 먹는 유혹이 아니던가. 그러니 하루 2200∼2500㎉면 충분할 어른이 3800㎉씩 먹고 살이 찌는 거라고 ‘음식 정치학’을 쓴 뉴욕대 매리온 네슬레 박사는 개탄한다.

‘패스트푸드 네이션’의 저자 에릭 슐로서도 미국인들은 이게 몸에 나쁘다는 걸 알면서 순간의 기쁨 때문에 ‘위험’을 부인한다고 했다. 마치 테러 위협을 외면하듯.

게다가 ‘패스트’ 푸드라는 이름을 보라. 빨리 먹어치울 수밖에 없다. 우리 뇌가 배부르다고 느끼기 전에 다 먹게 되니 더 먹고 비만과 성인병을 얻을 수밖에.

▷미국의 한 비만남성이 패스트푸드 때문에 당뇨와 비만, 심장병이 생겼다며 업체 4곳을 상대로 소송을 냈단다. 회사 측에서는 “누가 먹으랬냐고!”하는 모양인데 전 세계인을 상대로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퍼부어 왔으면서도 그렇게 오리발을 내밀면 안 되지 싶다. 그나저나 이건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도 깨끗하고 세련된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먹는 걸 무진장 좋아하지 않나. 그렇다고 무조건 못 먹게 할 수도 없고, 그들 업체에선 칼로리는 줄이면서 영양가를 높인 제품을 만들 수는 없는지. 아니면 또 엄마들이 각자 나서서 햄버거보다 맛있는 우리 음식으로 아이들 입맛을 돌려놓아야 하는 건가?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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